쫓겨다니는 자들은 보통 너무 바빠서 부부, 가족, 친구와의 일상적인 관계 그리고 그들 자신과의 관계마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만족할 만큼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1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더 많은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바쁜 사람이라는 평판이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자 중요 인사임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빈틈 없이 짜인 스케줄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 한다. 그들은 심한 자기 연민을 표출하기도 한다. 자신의 너무 많은 책임에 '매여' 있으며 조금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빠져나갈 출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그들에게 일어날 수..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 내면세계가 무질서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것. 내면세계의 질서의 유무.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학위, 경력, 대인관계, 건강, 미모와 같이 눈에 보이는 외면 세계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다 써버린다. 목적은 오직 하나. 빠른 출세와 성공. 그러나 외면세계를 지속할 수 있게 받쳐주고 있었던 내면세계에 공백이 생겨버리게 되면, 유능하지만 결국 지쳐 쓰러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면세계는 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 하나이다. (난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안에 전쟁터가 있..
인간미라는 게 뭘까?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인간미가 넘친다, 혹은 매정해 보인다고 판단해 버리는 걸까? 얼굴에서 풍기는, 그래서 그의 행동거지에서 풍기는 여유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물론 그저 순박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인간미가 넘친다는 말을 들을 순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미는 바로 여유 그 자체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정한 여유는 시간적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심적 여유를 지칭해야 맞을테다. 즉, 바쁜 일상에 쫓긴다고 해서 심적 여유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는 게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맛볼 수 있는 심적 여유를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한 여유 있는 자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시간적 여유는 물론, 심적 여유까지도 당연히 누리..
내 얼굴엔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 그리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등을 모두 아우르는 한 단어. 여유. 그러므로 여유가 없다는 말은 포용력, 이해심, 그리고 배려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누구라도 날 좋아할 사람 없겠다 싶다. 물론 속에 있는 걸 얼마나 겉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낼 순 있겠지만서도. 원래 조금 급한 성격에 맡은 일은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기 때문이라고 변변찮은 변명을 해보지만, 그게 결코 여유 없음을 설명해 주진 못하겠지. 그저 변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으니. 하기야 나조차도 납득이 안되니깐. 그렇다면 왜? 만족하지 못함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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