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는 여정. 헨리 나우웬 저, '탕자의 귀향'을 읽고. 나이 마흔이 넘어 뒤늦게 헨리 나우웬을 만났습니다. 내게 다가온 그는 풍성하면서도 깊은 영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가 진솔하고 가감없이 드러내는 내면의 연약한 부분을 통하여 저는 하나님을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거짓없이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수려한 필체에 빨려들어가면서도 그의 글을 읽고나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비단 그의 진솔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그의 진솔함에 예의를 갖춰 저 역시 진솔함으로 화답하면서 제 안의 난잡한 자기애와 쫓기는듯한 무질서한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쉼이 필요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 진솔함보다는, 돌아온 탕자인 작은 아들과, 비록 집은 나가지 않았지만 역시나 집으로 돌아와야 ..
이스라엘 멸망사에 흐르는 예언자적 목소리. 배경락 저, 도서출판 샘솟는기쁨 출판, ‘성경 속 왕조실록'을 읽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여 동일한 시공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해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네 개의 책이 신약의 사복음서라면, 구약에도 동일한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두 권의 책이 있다. 열왕기서와 역대서가 바로 그것이다. 두 책의 구체적 차이는 신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일반 성도의 입장에서도 그 명징한 차이는 직접 읽으며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동일한 왕의 통치가 기록된 부분을 간단히 비교만 해봐도 두 저자의 서로 다른 목적이 무엇인지 충분한 짐작이 가능하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멸망사다. 긍정적인 뉘앙스로..
두 세계관의 유쾌한 공존. 프랜시스 S. 콜린스 저, '신의 언어'를 읽고. 군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나는 그 해 제대를 했다. 2000년도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었지만, 인류 역사에서는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진 놀라운 해였다. 세계적으로 10년이 넘게 투자된 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그 해엔 네 종류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전체 약 30억 개 길이의 인간 유전체 서열이 모두 밝혀졌음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고 공개되었다. 우리 몸의 설계도 초안이라 할 수 있는 DNA로 이루어진 유전자 지도가 드디어 처음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유명해진 제임스 왓슨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Human..
정제된 아름다움을 만나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때묻지 않고 홀로 빛나는 원석이 카프카라면, 손이 많이 가는 정제과정을 거쳐 마침내 간결함과 고유함의 옷을 입은 보석은 하루키다. 함부로 던져진 것 같은 무례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성실하고 고운 정성이 자리잡았다. 정갈하고도 완숙한 글을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를 만난 건 행운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갈한 책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죽음’이다. 죽음은 곧 상실, 이 책이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판되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죽음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흠뻑 적시고 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와 직간접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놓인 소..
교회사 공부로 더욱 풍성한 하나님나라를! 최종원 저,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를 읽고. 역사가 돌고 돈다고 하는 건 단순히 동일하거나 비슷한 일의 반복 재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거시적인 패턴이다 (이런 면에서 역사는 인간의 집단 심리를 연구하기에 아주 좋은 데이터베이스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주로 승자에 의해 기록되어지는 역사이고, 비록 각기 다른 사회 구조와 사상과 문화 배경을 가진 공동체에서 기록되어졌다 해도, 각 역사에는 고유의 흐름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또 거기엔 패턴이 존재한다. 인간은 각자가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모여 이룬 공동체나 국가적인 차원에선 그 다양한 개성이 소멸되거나 말살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묵시와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다. 유진 피터슨 저,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을 읽고. 때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압축성과 설명할 수 없는 깊음이 진득하게 글에 배어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의 묵직한 파편들을 그대로 떠안은 채 그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천천히 읽어오면서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이 여전히 범람하여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을 유진 피터슨이라는 신뢰할만한 눈을 통해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비록 아직까진 요한계시록에 대해 내게 먼저 들어간 잘못된 편견과 착각들이 바른 이해보다 내 안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겸손: 편견과 오만함을 넘어. 로완 윌리엄스 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읽고. 진리처럼 믿어왔던 것들이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수 있고, 치우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서있던 자리가 치우친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언젠간 그 시간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온다. 닫혀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꾹 잠겨있던 녹슨 눈과 거미줄 쳐진 귀가 마침내 열리는 순간, 누군가에겐 자신이 쌓고 지켜왔던 성을 무너뜨려야만 하는 인생의 극점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기꺼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겐 한동안 놓고 있던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삶을 재조정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대학생 때 교회를 잠시 ..
사랑: 오만과 편견의 해체. 제인 오스틴 저, ‘오만과 편견’을 읽고. 오만함은 숨겨진 나르시시즘의 발현이자, 타자에게 비쳐진 나르시시즘의 거울상이다. 인간의 자신감은 자주 도도함으로, 도도함은 오만함으로 진화한다.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의 표출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감 상실을 거쳐 자기비하로 치닫는 경우 역시 또 다른 자기파멸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자신감을 가지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겸손한 자신감이 오랫동안 디디고 서있을 자리는 너무나도 좁다. 게다가 그 좁은 길 양쪽으론 파멸의 강이 버젓이 흐른다. 우린 과연 살면서 발을 헛디디지 않고, 파멸의 강에 익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대접받아왔고, 대접받는 것을 당연한 ..
옆집 누나가 들려주는 것만 같은 재미난 인류 이야기. 이상희 (이상희 (Sang-Hee Lee)) 저, '인류의 기원'을 읽고. 기원 논쟁처럼 다분야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아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화제 거리가 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인류의 기원을 묻는 건 인간 역사에 있어서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질문이지만, 여전히 거기엔 답이 없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타당하게 설명이 가능한 가설이 있을 뿐이다. 그 가설은 신학적인 입장에선 믿음으로 불리기도 하고, 철학적인 입장에선 하나의 인식 체계가 되기도 하며, 과학적인 입장에선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기도 한다. '인류의 기원'을 제목으로 하는 이 책 역시 인류의 기원을 알..
선한 영향력: 소금의 바른 존재감 드러내기. 김진수 (Jinsoo Kim) 저, '선한 영향력'을 읽고. 책을 덮고 조용히 내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소금인가? 맛을 잃진 않았는가? 아니면 너무 강한 맛을 내어 음식 맛을 버리고 있진 않는가?” 책 중간 즈음에 소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던 얘기지만 선한 영향력이라는 컨텍스트에서 읽었을 때 새롭게 다가왔다. 때론 몰랐던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던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추출해낼 때 갑절의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번이 그랬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음식은 맛을 내지 못한다. 반대로 소금이 강한 맛을 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싱거워도 짜도 음식은 제 맛을 낼 수 없다. 소금은 음식이 필요로 하는 만큼 적당히 들어가 음식 고유의 맛..
경계에 서서. J. D. 샐린저 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책 제목의 의미를 처음으로 눈치챌 수 있는 장면은, 주인공 ‘홀든’이 여동생 ‘피비’에게 선물할 레코드 음반을 사기 위해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걸어가고 있을 무렵 들려온 한 꼬마의 노래에서다. 그 꼬마는 “호밀밭을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을 부르고 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지나가는 차들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관통했고, 그 꼬마 부모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홀든의 귀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부모님 몰래 잠입한 자기 집에서 피비를 깨워 얘기를 나누던 중, 좋아하는 한 가지만 말해보라는 피비의 질문에 홀든이 머뭇거리다가 답한 장면에서 비로소 그 뜻은 명확해진다. 다분히 문학적이고 순수하며 이상적인 ..
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김승섭 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많지 않은 분량에 훌륭한 가독성,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인품이 묻어나는 친절한 필체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막히지 않고 책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술술 읽혔다고 해서 이 책이 가볍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저의 공감을 넘어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가 바라는 세상 사이에 나있는, 그 동안 잘 보이지 않았거나 어쩌면 아예 보길 원하지 않았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이 땅에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제가 속한 사회가 아픔이 생겨도 깊은 흉터..
페미니즘의 눈을 통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고찰하다. 강남순 저,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읽고. '결함이 있는 남성', '잘못된 남성', '악을 가져오는 위험한 존재'. 자,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렇다. 놀랍게도, 우리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아내, 우리의 딸,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 10달 간 머물렀던 자궁의 주인이자 우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바로 여성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여성에 대한 표현들이 어떤 정신병자에 의한 오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유명한 철학자와 신학자 (모두 남성이다), 각각 이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한 여성에 대한 이해였다. 누군가는 세 위인 모두 종교개혁 이전..
**작년 말 아내에게 선물 받은 헤세 선집 중 여덟 번째 책의 감상문입니다.** 하나의 색을 넘어 하나의 빛을 향하여. 헤르만 헤세 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스펙트럼 중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의 시작과 끝, 그리고 희망의 약속이 담긴 무지개 색의 시작과 끝. 우린 빨간색을 좋아할 수도 있고 보라색을 좋아할 수도 있으며, 빨간색이 될 수도 있고 보라색이 될 수도 있다. 단,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두 색 모두 하나의 빛에서 나왔다는 사실과 보이지 않는 빛의 영역이 보이는 영역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짧은 나머지, 그나마 드러난 현존재 격인 가시광 영역의 다양함과 다채로움조차도 모두 맛보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숙명을 지닌다. 빛 자체가..
저주의 쇠사슬을 끊고. J. D. 밴스 저,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 크든 작든 공통된 경험이 없다면, 상호 간의 소통은 어렵기 마련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분적으로라도 독자가 저자를 공감하지 못하면, 독서 자체는 노동이 되어 버리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특히 그 책이 회고록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감 없이 끝까지 읽어내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읽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한 백인 남성의 인생을 공감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하긴 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짧은 시간 끝까지 읽어내도록 만들었을까? 내게 있어 첫 미국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근교다. 쉐이커 ..
악은 질병일까? 스캇 펙 저, '거짓의 사람들'을 읽고. "악은 질병일까? 치료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이질감이 먼저 느껴지는 건 아마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신학적으로 아주 오래된 문제인 '악의 존재와 근원'에 대해서 질문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명쾌한 답이 없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꽤 익숙하기라도 하고, 의미 있는 사유거리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을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본다는 관점이 낯설게만 느껴진 것은, 그만큼 우리가 '악'을 인간이 다루거나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상위 개념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악은 과학적인 접근이기보단, 아무래도 우리에겐 형이상학적인 접근으로 다가서야 하는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여러 사람들..
제자리. 생텍쥐페리 저, '야간 비행'을 읽고. 늦은 밤, 아직도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아내의 전화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아들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아침부터 코를 훌쩍댄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나 역시 점심을 거르면서 또 하루를 살아냈다. 하지만,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이렇게 늘 있던 자리에 와 있다. 아내도 두어 시간 후면 올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제자리에 있게 된다. 나는 그제서야 다리를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을 테다. '제자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제자리는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 아니, 지켜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가만히 멈춰있는 곳이 아니라 또 다시 돌아온 곳이다. 그러므로 제자리는 결코 정적이지 않다. 거기엔 보이지 않는 희생과 부단한 노력이..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저,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IVP 출판)을 읽고. 정갈하면서도 뼈가 있고,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글을 만난다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다. 그 글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보석 같은 메시지를 들추어내어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때보다 더 큰 신선함과 놀라움, 그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조용히 전달해주는 글. 난 이런 글을 만날 때면 어느새 경건한 자가 되어 한층 더 낮아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마침내 나를 넘어서는 기로에 서게 된다. 벽을 뛰어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
**작년 말 아내에게 선물 받은 헤세 선집 중 일곱 번째 책의 감상문입니다. 한 달동안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장 그르니에와 카뮈를 짧게 책으로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겐 헤세가 더 잘 와닿습니다. 한 달만에 돌아온 헤세의 맛은 참 좋았습니다. 조금 슬프기는 했지만요.** 두 개의 심장. 헤르만 헤세 저, '로스할데'를 읽고. 책을 덮고, 아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사랑과 함께 후회와 반성으로 벅차올랐다. 태어난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들은 간질병 진단을 받았었다. 아직 젖도 끊지 않았고 말도 못하는 갓난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상징후가 발견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에게 부모인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
공공성: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다. 김근주 (김근주 (Keunjoo Kim)) 저, '복음의 공공성'을 읽고. 서론에서부터 김근주 교수는, 만약 기독교인들이 정치와 구별하여 개인의 영적 문제에 치중하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견해라고 명료하게 밝힌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마치 영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과 다름 없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이를 잘 뒷받침하는 듯하다. 정치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만을 마치 복음의 전부인 듯 부각시켜, 다른 것들은 모두 영적이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 그 동안 많은 교회는 복음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었고, 교인들에게는 바울의 칭의 개념만을 강조하여 개인구원론을 복음의 전부인 것마냥 가르쳐왔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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