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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에게 뻬쩨르부르그란?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뻬쩨르부르그 연대기‘를 읽고한국어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거의 다 섭렵한 이 시기에 ‘뻬쩨르부르그 연대기’를 읽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뻬쩨르부르그가 도스토옙스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작품을 읽고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뜻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열린책들에서는 '뻬쩨르부르그'로 표기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공간적 배경이 된다.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1821-1881년 당시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소련이 들어서며, 1918년 수도가 200년 만에 다시 모스크바로 복귀하면서 뻬쩨르부르그는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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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삶으로헤르만 헤세 저, ‘로스할데’를 다시 읽고7년 전 ‘로스할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인 화가 요한 페라구트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특히 가족을 버리고 일을 선택한 그의 결단을 도무지 지지할 수 없었다.다시 이 작품을 읽고 나니 7년 전 나의 관점이 다소 가벼웠을 뿐 아니라 다소 치우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를 가족과 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요한 페라구트의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가족 대신 일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을 진중하게 고려했을 때 그는 어쩌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길을 걸을 용기를 마침내 낸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두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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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슈테판 츠바이크 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고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을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지만 한 권만 읽고도 나는 그가 예사롭지 못한 필력가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그의 전작을 기어이 읽어낼 계획이지만 최근에 그의 미공개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과 브라질로 건너간 이후,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2년 동안 남긴 기록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짧지만 묵직한 기분이었다. 완독을 하고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역시 비범한 필력가라는 확인, 다른 하나는 책장에 꽂힌 그의 작품을 서둘러 읽어보고 싶은 욕구였다. 원주로 오가는 짧은 여정에서 남긴 감상을 옮긴다.1. 걱정 없이 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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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른 이름, 미성년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미성년‘을 다시 읽고나에게도 ‘이념‘이 있었다. 그 이념은 하나의 진리처럼 나에게 빛을 비춰주었고, 비밀스러운 힘을 공급해 주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나는 은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념이 향하는 목적만 달성하면 세상 따윈 다 감당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의 왕이었다. 문제는 그 왕좌가 좁디좁은 '나'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바로 그 우물 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념은 나의 빈약한 내면을 풍선처럼 부풀려주었고, 그래서 바닥에 붙어 있으나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을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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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몽상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여주인‘을 읽고금세 바닥날까 두려워 아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 하나를 조심스레 까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 내겐 슬픈 일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단편까지 포함하여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개수는, 내가 파악하기로는, 모두 서른다섯인데, 이번에 읽은 ‘여주인’을 빼면 이제 네 작품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문호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성취감이 남모를 아쉬움으로 변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내가 선별한 총 열다섯 편의 대표작을 재독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곧 맞닥뜨릴 상실로 인한 슬픔, 즉 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사라질 시기를 늦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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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장 훌륭한 베드타임 스토리텔러옥명호 저,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읽고아이가 태어나고 기어 다닐 무렵부터 아이와 놀아줄 땐 항상 책이 있었다. 그림이 전부이거나 글자라곤 단어 하나 정도 있는 책이었지만. 돌이 지나고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퇴근하면 씻고 아이를 목욕시킨 후 방바닥에 앉아 다리 사이에 품고 간단한 책을 읽어줬다. 그러면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이는 가만히 아빠의 품 안에 앉아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부턴 본격적으로 매일 자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후 3년간 떨어져 지내던 아내가 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그만두었는데 그때가 이미 ‘베드타임 스토리' 4년 차가 된 시기였다. 갑자기 영어를 사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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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인생에서 온전함을 경험하는 삶마르바 던 저, '안식'을 읽고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책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멈추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시간을 아껴서 하나라도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로부터 오는 강박으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쫓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쫓기는 자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멈추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는 멈춘 다음에 온다. 쫓는 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또 그다음이다. 멈추니 깨달아졌다. 아, 내게 필요한 건 안식이었구나.내가 아닌 남을 향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나름대로 그 모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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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넘어서는 모호함무라카미 하루키 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무려 761 페이지 장편소설을 8시간 정도에 독파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루키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하루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들을 수차례 시도만 했을 뿐 이 작품을 포함하여 지금껏 네 편밖에 읽지 않았는데 거기에 내 본심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너무 유명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키 작품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몽환적이며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되는 '현실과 비현실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는 모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의 작품을 끝내 읽지 않게 되는 나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단어는 '모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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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합일, 개성과 창조성헤르만 헤세 저, ‘게르트루트’를 다시 읽고 우리 안에는 어두움도 밝음도 있다. 우리는 고통도 기쁨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부정적인 자아와 긍정적인 자아가 따로 있는 것일까? 부정적인 자아는 어두움과 고통에, 긍정적인 자아는 밝음과 기쁨에 각각 반응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하나의 자아가 양극단의 자극에 모두 반응하는 것일까? 우리 안의 자아는 하나인 걸까, 둘 이상인 걸까? 지금 내가 인지하고 느끼고 있는 나는 어떤 나일까? 헤세를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헤세의 초기작 중 하나이자 한국 독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게르트루트'를 7년 만에 다시 읽으며 그때와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아의 분열과 합일을 나는 다시 숙고했고, 그것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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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 그리고 사랑김연수 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이토록 평범한 미래동반 자살로 인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임사체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 두 번째 삶은 시간이 거꾸로 간다. 속도는 같으나 방향이 반대다. 오늘 밤을 지나면 내일이 아니라 어제가 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까지 두 번째 삶을 거꾸로 살게 된다. 그들이 처음 만날 때 서로를 바라보던 그 사랑스러운 눈빛과 가슴 벅찬 얼굴, 그 설레던 마음까지 그대로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 이번엔 시간이 다시 반대로 간다. 동반자살하기 전과 같은 시간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두 번째 삶이 이미 서로가 경험한 삶을 하루하루 다시 되짚어가는 것이었다면, 세 번째 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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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없다도리스 레싱 저, ‘다섯째 아이‘를 읽고당혹스러움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 남편 데이비드와 함께 아이 여덟을 낳고 큰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졌던 헤리엇이 다섯째 아이 벤을 가졌을 때부터 다소 목가적이고 낭만적일 것 같았던 이 소설의 장르는 호러가 된다. 다섯째 아이는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꿨던 삶에 단절을 가져왔고, 급기야 그들의 오랜 꿈이 과연 실현 가능했는지, 그저 몽상에 불과했는지를 재고하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서먹해지며, 첫째부터 넷째 아이들과의 관계도 깨지거나 소원해지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다섯째 아이 벤의 존재는 모두의 불행과 저주의 씨앗이었던 걸까?저자 도리스 레싱이 벤을 태어나기 전부터 폭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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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이 아닌 예술성의 이면레프 톨스토이 저, '하지 무라트'를 읽고아바르인 산민 하지 무라트는 캅카스의 이름난 전사이자 나이브였다. 나이브는 이슬람사회 부족장 또는 장수를 뜻한다. 하지 무라트는 실존 인물이었다. 톨스토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꺾어 던져버린 '타타르 풀'이라고도 불리는 엉겅퀴의 굴하지 않는 생명력에 경탄하며 오래전에 들은 하지 무라트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하지 무라트가 꺾인 엉겅퀴처럼 잘린 머리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짧은 기간을 재구성했으며, 1828년생인 톨스토이가 많은 시간 깊은 애정을 들여 1904년 완성했지만 그의 의지에 따라 1912년, 그러니까 그의 사후 2년 뒤에 출간되었다.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러시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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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는 공감김민석 글, 안정혜 그림, ‘영생을 주는 소녀’를 읽고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책. 텍스트가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여백을 그림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책. 세 권으로 구성된 ‘영생을 주는 소녀’는 만화책이다. 두 시간 만에 세 권을 내리읽었다.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화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폭력과 기독교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속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이다. 에붐의 대표 이도연은 스스로가 성폭력의 피해자다. 가해자는 윤민후 목사, 윤다라의 아버지다. 주인공 윤다라는 아버지가 강단 앞에서는 훌륭한 목사이지만 강단 뒤에서는 어머니를 때리고 여러 여성 교인들을 성추행 및 성폭력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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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그늘 밑에헤르만 헤세 저, '수레바퀴 밑에'를 다시 읽고재독의 힘은 초독 때 주변으로 밀려났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로 발현된다. 또한 독자의 눈을 넘어 작가의 눈으로 읽는 텍스트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것과 동화되어 이전보다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7년 만에 다시 읽은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는 특히 그랬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을 나는 재독이 아닌 삼독을 했다. 중학생 시절에 가장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헤세를 찾았던 것 같다. 자아의 발견, 성찰, 성장, 성숙, 그리고 분열을 거치고 마침내 합일에 이르는 내면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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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 변하면 된다이정모 저, '찬란한 멸종'을 읽고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 수도 없겠지만) 이 책의 저자 이정모처럼 과학 책을 맛깔나게 쓰는 작가가 한국에 또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독보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그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돈이 아깝거나 도움이 되지 않다거나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의 글은 첫째, 재밌다. 유쾌하다. 둘째, 유익하다, 공부가 된다. 셋째, 쏙쏙 들어온다. 이러니 남녀노소 누구나 교양 수준의 과학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이정모의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름 생물학 박사학위 소유자인 나조차도 이 세 가지 장점을 누리며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타깃 독자가 청소년에 국한되는 것처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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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 없는한강 저, '흰'을 읽고‘흰’이란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다분히 독립적으로 보이는 많은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사진도 여러 장 끼어 있어 마치 시집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이미지가 남는다. 짧은 텍스트를 읽었는데 남는 건 그림이다. 이 작품은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가 묻어나는 텍스트로 그린 그림집인 셈이다. 한강 작가의 여느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서사가 아닌 묘사 위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데엔 여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텍스트 대비 물리적 여백이 많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그만큼 천천히 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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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령‘를 다시 읽고 5년 만에 다시 '악령'을 읽으며 나는 이번에도 이 작품을 관통하는 렌즈로써 제사로 쓰인 누가복음 8장 32-36절을 의지하게 된다. 한 사람 안에 들어가 있던 악령들이 예수의 허락으로 인해 돼지 속으로 옮겨갔고, 그 돼지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은 일화가 소개된 성경본문이다. 초독 때 나는 이 본문에서 악령들이 처음 거하던 한 사람을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로, 돼지떼를 스쩨빤의 아들 표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를 필두로 한 5인조로 보았다. 뚜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의 핵심 구도를 따라 아버지 세대로부터 아들 세대로, 마치 악령이 한 사람으로부터 돼지떼로 옮겨가듯, 사상과 이념이 전달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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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덕, 하늘샘 저, '하루, 예배의 순간'을 읽고소소한 일상 가운데 깃든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느끼게 해 주신 고마운 두 분께,위도 37.4의 대한민국 서울과 위도 42.9에 위치한 미국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 사이의 거리를 살펴보니 약 만 킬로미터 (육천오백 마일) 남짓 되는 것 같더군요. 비행기로 18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직항은 존재하지도 않네요. 참 먼 거리입니다. 하지만 저의 첫 미국이 미시간 주와 남쪽으로 접하고 있는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여서 그런지 그 거리가 낯설지만은 않아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11년 미국 거주 경험이 이 책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모두 경험한 저에게는 편지에서 배경으로 깔려있는 혜덕 작가님의 한국과 늘샘의 미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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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양귀자 저, '모순'을 읽고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름은 안진진. ‘참 진’ 자가 두 번이나 연거푸 쓰였으나 성이 하필 ‘안’씨였던 사람. '진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도, '안'이라는 성을 물려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참한 성품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기대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성 때문에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아버지의 타고난 그 무엇이 딸에게 기대했던 그 어떤 것도 부정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던 걸까. 혹시 아무리 강한 삶에의 의지도 천성이나 운명을 이길 수 없다는 철학을 무의식 중에 전달했던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무책임했던 걸까.안진진에 의해 묘사되는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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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교회, 공동체의 일치김종원 저,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를 읽고늦게 잠들었음에도 모처럼 개운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감상문을 쓰기 위한 나의 루틴을 쫓아 어젯밤 책을 읽으며 노트에 옮겨놓은 문장들과 끄적거린 나의 단상들을 훑어본다. 새벽 2시경 잠들기 직전에 써놓은 마지막 줄에 내 시선이 멈춘다. 이 책이 내게 남긴 메시지다. “복음이면 되는구나! 교회면 되는구나! 공동체면 되는구나!”어릴 적 교회 간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채 나는 성인이 되었고, 그 이후 어지간해선 개인이나 교회 간증집을 멀리해 왔다. 의외로 많은 경우 간증은 영웅담 혹은 성공담의 포장지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간증하는 당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여 이야기를 그럴 싸하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스스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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