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수인가 서진교 저, ‘예수행복학 개론’을 읽고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앞부분에 소개되는 몇몇 대표적인 내러티브를 예수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며 소설의 형식을 빌려와 약간의 주해와 해석을 가한 서진교 목사의 이 작품은 마태복음 25장 40절로 수렴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는 저자의 첫 저서 ‘작은 자의 하나님’이라는 간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저자의 일상적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혹은 읽기 전이나 후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쓴 ‘누가 예수인가?’이다. 이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구..
인생과 인간, 코미디 같은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80페이지 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세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된다. 그중 가장 짧은 작품이 표제로 쓰인 ‘깊이에의 강요’이다. 수년 전에 이 책을 구입했을 때에도 나는 이 작품밖에 읽지 않았다. 다 읽는 데 십 분 채 걸리지 않는 이 소설은 의외로 여운이 강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주관적이고 무분별한 평가가 한 예술가를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깊이가 없다는 한 문장 때문에 저명한 예술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쫓노라면 씁쓸함이라는 자갈을 씹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 씁쓸함의 정점은 자살 후 남겨진 예술작품을 같은 비평가가 깊이에의 강요가 느껴진다고 평가하는..
내적 자유를 찾는 여정, 지금도 계속되는 싸움 타라 웨스트오버 저, ‘배움의 발견’을 읽고 소설로 보이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어판 표지에선 알아채기 힘들다. 한국에서 붙인 제목 ’배움의 발견‘을 봐도, 부제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를 읽어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원서 표지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원제 ‘Educated' 오른쪽 아래에 'A MEMOIR'라고 쓰여있다. 그것도 대문자로, 별다른 설명 없이, 덩그러니.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회고록’이라는 뜻의 ‘Memoir'라는 단어가 이 작품에 대한 독법의 시작점이라고. 소설과 회고록의 차이는 허구와 실제의 차이다.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는 저자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회고록 화자의 이..
처음 읽는 푸시킨 알렉산드르 푸시킨 저 ’눈보라‘를 읽고 미천한 상식으로, 학창 시절부터 내게 각인된 푸시킨이라는 이름은 그저 외국 시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그들의 입을 통해 자주 들려진 푸시킨은 그 이상이었다. 그들보다 한 세대 앞선 작가라는 위상을 넘어 러시아 문학을 있게 한 근원 같은 느낌이랄까. 러시아 국민은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숱한 러시아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푸시킨.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는 푸시킨으로부터 뻗어 나온 지류의 깊고 풍성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언제 한번 읽어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녹색광선 책으로 드디어 푸시킨을 읽게..
잔혹함과 나약함 사이에서 엔도 슈사쿠 저, ‘바다와 독약’을 읽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던 1945년 5월, 일본을 공습하던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의 초대형 폭격기 B-29 한 대가 오이타현과 구마모토현 경계 근처에 추락하여 탑승원 12명이 모두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중 8명은 서부 사령부로부터 재판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때마침 생체실험용으로 제공해 달라는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의 제안이 승인되는 바람에 이들은 모두 끔찍한 실험동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만행은 실화다. 역사의 한 장면이다. 그해 5월 17일부터 6월 2일에 걸쳐 실제로 벌어진 이 처참한 인권유린 사건을 역사는 ‘규슈대학 생체해부 사건’이라고 기록한다. ‘규슈대학 생체해부 사건’은 이 작품 ‘바다와 독약’의..
결핍을 머금은 평범하고 충만한 삶 장일 저, ‘결핍의 위로’를 읽고 장일은 목사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다. 그리고 희귀 질환인 크론병 환자다. 그렇다면 이 책은 목사의 이야기일까, 남편이자 아빠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크론병 환자의 이야기일까. 버스를 오가면서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답을 내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이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구나. 직업이 목사일 뿐 이 책은 목회 관련 에피소드도 설교집도 아니다. 저자는 남편이자 아빠이지만 이 책은 부부관계나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크론병 환자이지만 어떤 아픔을 가진 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두 가지 유형에 빠지지 않는다. 즉, 그 아픔에 구속되지도 않고 그것을 훈장처럼 여기지도 않는다..
침묵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성경 속 7인을 통해 듣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경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눈물과 탄식 가운데 있었던 7명의 성경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내러티브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을, 성경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가운데 쓰인 예레미야애가를 우리에게 주셨던 이유의 연장선에서, 들어보자고 요청한다. 코로나로 흉흉했던 시대를 함께 지내온 크리스토퍼 라이트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으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 글은 저자가 선택한 7명의 인물과 그에 따른 소주제에 따른 나의 짧은 감상들로 대신한다. 1. 아브라함, 시험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걷..
그래도 계속되는 삶, 기꺼이 끌어안는 삶 켄트 하루프 저, ‘축복 (Benediction)’을 읽고 밤 11시. 모두가 잠자리에 든 이 시간. 나는 언제나처럼 조그만 내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멀리서 기차 소리와 차 소리가 들리고, 가까이에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늘 우리 주위에 있지만, 귀 기울이지 않으면 좀처럼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다.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소리들. 나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때론 진부하게 느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종종 이 평범함이 다름 아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어느새 내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차게 되고, 감겼는지도 모르고 있던 내 내면의 눈이 열려 나를 돌아보게 된다. 깨어나는 순간이다. 영점이 재조정되는 순간..
**#김영웅의책과일상 으로 쓰인 300번째 감상문입니다** 위로와 치유: 애도의 객체가 애도의 주체에게 가져다준 선물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고 ‘제2의 성’의 저자, 페미니즘 투사, 윤리적 실존주의 철학자 등의 굵직굵직한 타이틀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연인으로 더 알려졌던 시몬 드 보부아르. 그녀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던 사르트르에 이어 2등으로 프랑스 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하면서 사상 최연소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천재 철학자였다. 사르트르라는 거대한 존재에 가려져 본인의 철학적 정체성마저 사람들에게 잊히기 일쑤였던 그녀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과 다른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위대한 사상가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한계를 생각하며 C. S. 루이스 저, ‘인간 폐지’를 읽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앞에 서서 비슷한 인상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엄하다, 웅장하다, 압도적이다, 등의 표현은 제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실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을 개미와 같이 작은 존재로 인지하게 되는 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타나 장엄한 자연을 보고 경탄하는 여러분에게 ‘그건 자연이 장엄한 게 아니라 실은 그렇게 느끼는 당신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책은 루이스의 변증서로써 ‘순전한 기독교’의 1부 ..
결국 다시 사랑하는 책으로 오경철 저, ‘편집 후기’를 읽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편집자의 일이 궁금했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애정하고 신뢰하는 신형철의 추천사도 한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부제,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이 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알았다. 약간의 판단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그 착오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이 부제의 강세는 ‘책을 사랑하는 일’에 있지 않고 ‘결국’에 있다는 것. 둘째, ‘책을 사랑하는 일’은 ‘책 읽기를 사랑하는 일’과 다르다는 것. ‘책’은 ‘책 읽기’를 넘어서는 개념이었다. ‘책 읽기’는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마지막 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은 읽히기 전에 기획되어야 하고, 저자에 의해 쓰인 원고를 편집하는 일련의 지난..
가장 순정적인,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백야’를 읽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가장 순정적이고, 가장 신파조에 가까울 정도로 통속적이며, 가장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답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평이한 소설이 아닌가 한다. 왜 그런고 해서 찾아보니,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1845년, 도스토옙스키가 24세가 되던 해에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자신의 이름을 러시아 전역에 알리게 되는 작품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되었고, 이 작품 ‘백야’는 1848년에 발표되었으니, 첫 소설 이후 3년 만에 쓰인 소설인 셈이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유형 시절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니, 우리에게 알려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모..
악마의 눈을 빌려 통찰해낸 그리스도인의 내면 C. S. 루이스 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 나의 첫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도 ‘나니아 연대기’도 아니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였다. 감상문을 쓰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리에 속해 아무 생각 없이 교회를 들락거리며 그 안의 문화를 탐방하고 즐기고 있을 시기에 누군가가 권해줘서 읽었던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였다. 누가 권해줬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 책만은 기억에 남았다. 단지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 (웜우드)에게 쓴 편지 형식이 선보이는 신선함 때문만이 아니라, 악마의 시선으로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고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흘렀다. 나는 40대 중..
죽음의 시스템에서 생명의 시스템으로 월터 브루그만 저, ‘안식일은 저항이다’를 읽고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일은 저항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불안과 강요와 배타주의와 과중한 일에 대한 저항, 아니 이 모든 것들을 생산해 내는, 아니 생산해 낼 수밖에 없는 ‘죽음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다. 브루그만은 안식일이 저항인 이유를 ‘안식일이 상품 생산과 소비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끝없는 욕망, 끝없는 생산, 끝없는 노동을 요구하는 물질주의, 즉 맘몬의 방식은 이미 우리 삶에 팽배해 있으며,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파라오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 절박하면서도 ..
자기 계발서를 넘어서는 인생 에세이 엔도 슈사쿠 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읽고 인생 사는 노하우, 인간관계 잘하는 법 등의 처세술을 적어놓은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은 일찌감치 졸업했다. 진부한 원리를 마치 저자 혼자 알아낸 것처럼 호들갑 떨며 비결을 빙자하여 자기 자랑하는 꼴이 보기 싫었고, 거짓 겸손을 나름 우아하게 사용하며 토해낸 열변도 한낱 시공간에 제한된 특수한 상황 논리에 철저하게 좌우되는 단발적인 이벤트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겠지만, 그런 걸 찾아내는 데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읽을 것들은 언제나 넘쳐나 산을 이루고 있는데도 나는 그 높은 정상도 보지 못하는 저 아래 땅바닥에 붙어 있는 개미 한 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읽지..
영화와 문학을 넘어 인간에 이르기까지 신형철 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믿음직한 나침반처럼 나는 독서와 독서 사이에 신형철의 글을 조금씩 꺼내 읽는다. 한꺼번에 다 읽기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랬다가는 나의 소화 능력을 초과하여 오줌만 노랗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것은 아끼고 싶은 법. 몇 꼭지씩 나눠 책과 책 사이에 읽자는 게 신형철의 글을 아끼는 나만의 방법이자 그의 글을 읽는 나만의 독법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완독하는 데에도 세 달 정도 걸렸다. 그 사이에 읽은 책도 족히 열 권은 넘을 것이다. 소화 불량일 때 찾아 먹는 신뢰할 만한 소화제처럼 나는 쓰기 대비 읽기에 치우칠 때마다 신형철의 글을 찾아 읽는다. 능수능란하고 처세에 능한 수..
기도에 관한 루이스의 생각 C. S. 루이스 저, ‘개인 기도’를 읽고 공동 기도가 아닌 개인 기도에 관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의 입장에서 바라본 여러 의문점들과 그에 대한 루이스의 견해 혹은 믿음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다. 자칫 가르치려 드는 자의 강압적인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루이스는 말콤이라는 가상 인물을 설정하고 그에게 편지로 답을 하는 방식을 취한 듯하다. ‘루이스가 메리에게’에서도 비슷한 형식을 볼 수 있지만, 말콤은 메리보다는 신학 혹은 신앙적인 지식과 경험이 많은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의 답장은 기독교의 교리나 문화 혹은 세계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보다는 좀 더 세분화되고 전문적이라 할 수 있는 깊이까지 나아간다. 이 책의 장점은 평신도 입장에서 개인 기도에 관한..
애틋함일지도 모르는 긴장 섞인 서먹함 슈테판 츠바이크 저, ‘과거로의 여행’을 읽고 한 남자가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그가 부인이라 부르는 한 여자를 만나 함께 기차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를 향한다. 두 사람 사이엔 애틋함일지도 모르는 긴장 섞인 서먹함이 감돈다. 이 묘한 감정은 사랑, 열정, 초조, 혼란, 그리고 자제가 낳은 열매이자 이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유지되는 감정선이다. 약 십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헤어지기 직전 금지된 사랑을 막 시작했었다. 그러나 남자의 멕시코 장기출장 때문에 둘은 반강제적으로 헤어져야만 했고, 마침 유럽에서 터진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별의 기간은 더 길어졌었다. 유일하게 둘을 이어주던 편지까지 전쟁 때문에 불가능해지면서 남자의 마음에선 점점 여자가 잊혀갔다. 남자..
내재된 욕망 오노레 드 발자크 저,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을 읽고 단편소설을 즐기지 않는다. 급작스런 이야기 전개로 말미암아 증폭되는 주해와 해석의 간극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현대소설을 즐기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재치와 기발함보다는 진부할 정도로 상투적인 (뻔한) 주제와 이야기 전개를 선호하는 나는 빛바랜 상투성에서 감춰진 보석과도 같은 진리를 재발견하고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환기시키는 것이 문학이 해낼 수 있는 힘이라 믿는다. 이런 나로서는 이 책에 담긴 두 단편을 읽긴 했으나 제대로 읽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맥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편소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고야 마는 사건이 과연 무엇을 상징 (의미)하는..
쓰기의 말들의 힘 은유 저, ‘쓰기의 말들’을 읽고 본인을 평범한 생계형 주부라고 하는 은유 (본명 아닌 필명) 작가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은유 작가는 스스로를 국문과나 문창과나 신방과 출신이 아니며 별도의 창작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위에 언급한 전공 출신이 아닌, 숱한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 역시 상황만 다를 뿐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사놓고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마침내 다 읽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 시작해서 버스 안에서 끝낸 나의 첫 책이기도 하다.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판형이라 늘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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