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훔치는 글: 황홀하도록 반짝이는 에세이 알베르 카뮈 저, ‘결혼’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읽고 5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더운 여름날, 캘리포니아에서 전철을 타고 일터를 향하고 있었다. 커다란 창으로 웅장한 산가브리엘 산맥이 보였고, 내 손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러나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는 문장에 압도된 채 나는 열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을 가득 메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아, 그 묘했던 기분이란! 그 글은 카뮈의 에세이, ‘결혼’의 첫 꼭지, ‘티파사에서의 결혼’이었다. 나는 금세 상상 속에서 아프리카 대륙 북단에 위치한 알제리로 날아갔고, 그곳의 태양에 눈부셔하고, 그곳에서 강렬하게 풍기는 압생트 풀 향에 취했으며, 그곳의..
그림 덕분에 더 깊고 풍성해지는 글 조주관 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읽고 예술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걸까. 어떤 작가가 음악 혹은 미술을 좋아했다거나 거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곡을 쓰는 것도, 미술작품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도 모두 창조의 행위에 속하며 그것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고뇌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쓰는 작가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사랑은 텍스트로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수많은 소설에서 음악이나 미술에 관계된 재료들 (이를테면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 ‘유리알 유희’, ‘게르트루트’에서 음악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실낙원이 아닌 낙원의 이미지를 금성에서 구현하다 C. S. 루이스 저, ‘페렐란드라’를 읽고 ‘우주 3부작’의 1부 ‘침묵의 행성 밖에서’가 1938년에 출간되고, 5년 뒤인 1943년에 2부 ‘페렐란드라’가 출간된다. 그 사이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942년 출간)’를 출간했고, ‘페렐란드라’와 같은 해에 ‘인간폐지’를 출간한다. 5년간 그는 3권의 책을 쓴 셈이다. 루이스의 첫 저서, ‘순례자의 귀향’이 1933년에, 마지막 저서, ‘폐기된 이미지’가 1964년에 출간되었으니, 30년 남짓 루이스는 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으며, 평균 1년에 적어도 1권을 출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주 3부작’의 1부와 2부 사이인 5년간 3권의 출간은 평균 이하라 볼 수 있다. 무슨 이유가 ..
친근하게 다가온 루이스 C. S. 루이스 저, ‘루이스가 메리에게’를 읽고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의도된 게 아니라, 루이스가 51세가 되던 1950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63년까지 그가 메리라는 한 미국 여성 작가에게 쓴 편지들의 모음집이다. 루이스는 평생 투덜거리면서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루이스의 명성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루이스는 편지를 많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들에 대한 답장에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수많은 답장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루이스의 저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기독교 ..
기독교 알레고리가 가득한 루이스의 SF 소설 C. S. 루이스 저,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읽고 읽고 나니 한동안 잊었던 루이스의 매력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나는 루이스의 변증서보다 소설에 더 끌린다. ‘나니아 연대기’의 경우는 잘 만들어진 3부작 영화로 봤지만 (다섯 번은 족히 봤으리라), 나머지 소설들, 그러니까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천국과 지옥의 이혼’, ‘순례자의 귀향’은 모두 책으로 읽었다. 한결같이 내겐 저 유명한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와 같은 변증서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논리 정연한 변증은 강하고 빠른 지적 쾌감을 선사하는 반면, 문학소설은 이성과 감정을 넘나들며 공감각적인 향연을 선보인다. 변증은 빠른 직구처럼 타깃에 꽂히고 나면 효과가..
무위의 역설 장 그르니에 저, ‘섬’을 읽고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일부러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은 무위가 아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그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이 곧 무위의 삶이다. 요컨대, 거스르는 삶이 아닌 흘러가는 삶, 의도나 목적을 내려놓는 삶, ‘채워있음’보다는 ‘비어있음’이 어울리는 삶이 무위의 삶이다. ‘무위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르니에의 ‘섬’을 읽으며 나는 활자화된 사유와 삶이 순리에 따라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작품을 번역한 김화영의 글은 옳다. 나도 ‘목적 없이 읽고 싶은 한두 페이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수많은 책들을 꺼내서 쌓기만 하는 고독한 밤을 아는 어떤 사람들’ 중 하나이며, ‘지식을 넓히거나 지혜를 ..
논리 정연하고 진솔한 루이스와 그의 글 C. S. 루이스 저, ‘세상의 마지막 밤’을 읽고 이 책은 C. S. 루이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인 ‘세상의 마지막 밤’은 그중 하나이며, 이 책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소개된다. 일곱 편의 에세이는 각각 다른 지면에 독립적으로 실렸던 글이며 독립적인 주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가장 먼저 써진 에세이가 1952년이고, 가장 나중이 1959년이며, 1898년생인 루이스는 1963년에 작고하므로, 여기 소개된 일곱 편의 에세이는 루이스가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이후의 글로써 루이스의 연륜과 통찰이 잘 묻어난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에 태어난 루이스는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장본인..
상상과 재해석이 만들어낸 창조와 깊고 풍성한 이해 이승우 저, ‘사랑이 한 일’을 읽고 ‘생의 이면’ 이후 이승우를 두 번째로 읽게 된 작품으로써, 이 책 안에는 이미 지면을 달리하며 소개되고 읽혔던 네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미발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생의 이면’에서 기독교의 여러 이미지와 플롯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했다면, ‘사랑이 한 일’에서 이승우는 거침없이 성경 속으로 들어간다. 창세기 중에서도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 이렇게 삼 대에 걸쳐 소개되는 대표적인 내러티브를 선별하고,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학적 해석,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허구적인,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연출해 낸다. 성경의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어느 부..
경이에 찬 눈으로 높은 산과 깊은 광맥을 마주하는 낮은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저,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를 읽고 얼마나 많이 읽으면, 아니 어떻게 읽으면 이런 평전을 쓸 수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조금 안다고 여겨왔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아는 건 흩어진 여러 조각 중 하나일 뿐이었구나, 표층도 뚫지 못한 주제에 거만하게 내부를 아는 척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흥분으로 가득 찬 채 수치와 감동의 경계를 비틀거리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그가 또 하나의 높은 산이라서 반갑다. 그 산을 감히 내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누군가의 평전을 읽는다는 건 그 누군가에 대한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
시대의 요구: 참 목회자, 참 설교자 방영민 저, ‘책의 숲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읽고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고 캘리포니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신앙 서적을 시작으로 영성/신학 서적으로 막 진입을 했고,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들어 성경과 함께 신학교에서 사용하는 조직신학 책과 성서해석학 책을 조금씩, 나의 미천한 이해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읽어보려고, 비록 진도는 안 나갔지만, 발버둥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간증이나 설교 위주의, 상대적으로 읽기 편하고 감정적 위로/공감/치유 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읽는 책이 아닌, 지적인 부분까지 해소시켜주고,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며, 성경에만 갇히지 않고 시대와 문화를 관찰하고 해석하여 ..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로 팀 켈러 저, ‘내가 만든 신’을 읽고 이 책의 원제는 ‘Counterfeit gods’이다. 책을 열면 저작권 페이지가 나오기도 전에 영어 단어 counterfeit에 대한 뜻풀이가 등장한다. 다음과 같다. counterfeit [카운터핏] 1. 위조의, 모조의, 가짜의, 거짓의, 허울뿐인 2. -인 체하는, 가장한 한 장을 더 넘기면 저작권 페이지가 나오고 바로 옆에 제목, 저자, 옮긴이, 출판사가 적힌 페이지가 보인다. 그 페이지 맨 위에 한글로 이렇게 적혀있다.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부제인가 싶어 원서 정보를 찾아보니 아닌 듯하다. 한국 번역판에서만 사용되는 문구 같다. 두란노에서 무엇을 강조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요컨대 ‘가짜 신들’이 하나님 자리를 훔치..
구약과 그리스도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구약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읽고 어제 박영호 목사님의 포스팅은 내가 6년 전 크리스토퍼 라이트에 꽂혀 그의 여러 저서를 집중적으로 읽으며 나름 은혜도 받고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일 때를 떠올리게 했다. 나에겐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고 회복되던 시기였다. 두 번째 회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기였다.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구약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라는 책도 평신도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박영호 목사님께서도 지적하신 바, ’그리스도를 향한 것‘과 ’그리스도에 관한 것‘의 차이를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목회자들은 이 책을 읽고 구약을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겠지만, 평신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설교..
트리스탄이 아닌 트리스탄: 죽지 않고 끝내 살아남는 정신성과 예술성 토마스 만 저, ‘트리스탄’을 읽고 이 작품의 제목 ‘트리스탄’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훗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된, 사랑과 죽음을 모티프로 하는 중세 유럽 전설 (혹은 신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전투에서 부상당한 자신을 치료해준 적국의 공주 이졸데에게 반한 트리스탄 왕자는 외삼촌 마크 왕과 이졸데가 정략결혼을 올리기 전, 이졸데와 함께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고 거부할 수 없는 은밀한 사랑에 빠진다. 하루 만나지 못하면 병이 들고, 사흘 못 보면 죽게 되는 운명에 처한 두 사람. 그들의 관계는 결국 발각되고, 트리스탄은 쫓겨난다. 이후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트리스탄은 죽고, 슬픔에 빠진 이졸데도 잇따라 죽..
두 권의 신학 책을 읽고 최근 신학 책을 두 권 읽었다. 문학 책과 달리 신학 책에 대한 감상문 쓰기는 점점 주저하게 된다. 한창 수십 권의 신학 책을 읽으며 신학적인 궁금증을 해소시켜나갈 땐 읽는 책마다 새로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적인 호기심도 어느 정도 채워지고, 신학이나 과학 혹은 철학이나 인문학의 한계를 가늠하게 되면서 그 열정도 많이 식어버렸다. 지금도 열 권 중 한두 권은 신학 책을 꾸준히 읽어나가지만, 그것은 순수한 신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마치 성경을 서너 장씩 매일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처럼, 나름대로 영성 훈련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만 읽어나가는 방법보다는 신학 책을 병행하는 편이, 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풍성하고 깊은 영성을..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슈테판 츠바이크 저, ‘환상의 밤’을 읽고 여기 우물에 갇힌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상류계층에 속한 예비역 장교이자 사교계에서 존경받는 신사다. 동시에 그는 현재 권태에 빠진 불감증 환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는 그가 사는 공간이 진공 상태라는 진실을 보게 된다.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상태로 부유하는 자신의 일상이 가면 무도회장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알약을 먹고 현실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환상의 밤, 예기치 못하게 훅 들어온 낯선 세상. 그러나 그 세상은 존재하지 않던 세상이 아니라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봉인된 채 숨겨지고 잊힌 세상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이른 나이에 받은 넘치는 유산으로 인한 부유함이 그의 내면 자아를..
이제 나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룰루 밀러 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했다. 미리 읽은 친구들의 권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이 책을 책장에 도로 꽂아 두던지 중고책으로 팔아치웠을 것이다. 무려 절반을 읽었을 때까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수백 권의 소설을 읽어왔음에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이런 반전으로 급박하게 진행될 줄은. 에필로그를 보아 하니 이 구성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짜여진 저자의 설계였던 것 같다. 저자 스스로가 이 책의 탄생 배경을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Naming Nature)’라는 분류학 책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직관에 의해 경도된 관행 (혹은 신념)이 가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
인간은 무엇에 이끌리는가. 슈테판 츠바이크 저, ‘감정의 혼란’을 읽고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에서 물어야 할 건 ‘언제’이다. 우리는 언제 이성적일까?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아갈까? 아니면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까? 이성은 습관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면 왜 우리의 오늘은 과거의 지배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과연 인간이 이성적이라는 말은 옳은 걸까?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시공간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닌 듯하다. 우리의 세상은 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세상 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예측과 통제..
글쓰기 고수의 생활 밀착형 과학 에세이 이정모 저,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을 읽고 생활 밀착형 과학 에세이다. 여기서 생활이란 정치, 문화, 사회, 경제가 섞여있는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말한다. 그래서 과학을 전공한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누구나 경험하고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정확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 카더라 통신에 의한 미신, 무속, 관습, 편견으로 점철된 비과학적 지식을 타파하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미신처럼 믿어왔던 오래된 오해가 풀리고 무속과 편견에서 벗어나 마침내 과학적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기쁨도 만끽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을 우리 시대의 고지식한 어르신들이 읽고 꼰대의 우물에서 벗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덧붙여, 독자가 아닌..
삶: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 안드레이 마킨 저, ‘어느 삶의 음악’을 읽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글이 있다. 휘몰아치는 서사 위주의 (흔히 ‘페이지 터너’라 불리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언젠가부터 문장이 갖는 무게를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이 무게는 주관적인 해석의 산물이다). 문장의 무게는 그 문장이 담아내는 사건이나 상황의 무게에 있지 않고, 그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글로 써내는 작가의 시선과 내면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기계적인 묘사에 급급한 글을 써내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그 ‘순간’을 담아내는 글을 쓴다. 여기서의 ‘순간’이란 공감각적인 통찰의 반영이며, 그래서 고유하고 정확한 글을 요구한다. 그것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관찰과 성찰을 ..
지나치게 충실한 설명, 여백의 부재 이승우 저, ‘생의 이면’을 읽고 너무 늦게 읽은 탓일까, 아니면 아직도 이 책을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몇몇 지인들에게 인생의 책으로 꼽히곤 하는 이승우의 ‘생의 이면’을 마침내 다 읽었지만, 나는 이렇다 할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기대가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실망이 큰 걸 보면 말이다. 작가의 기독교 세계관이 녹아든 이 작품이 내게는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니,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싶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뉘앙스가 반영된 문학이 내겐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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