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은 신앙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정일 저,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을 읽고 두 전작 ‘문학은 어떻게 더 신앙을 깊게 만드는가‘,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와 함께 이 책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동일하다. 제목에서 문학이 소설로 바뀌었을 뿐 저자의 메시지는 반복된다. 문학이 기독교 신앙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 그리스도인이자 아마추어 문학도, 그리고 본업인 과학 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이런 반복된 메시지가 여전히, 항상 반갑다. 저자와 같은 이유로 나 역시 진지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성경 읽기와 더불어 문학 (그중에서도 고전문학) 읽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 모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도..

입맛에 맞지 않은 새로운 음식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일독 및 재독 하는 방법도 권장할 만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용기 내어 한두 권 읽어보는 것도 절대 게을리하지 말라고 나는 문학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전자는 깊이를, 후자는 풍성함을 배가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깊이와 풍성함, 이 두 가지는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으며, 문학이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문학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까지도 포괄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라는 칠레 작가를 처음 만났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이 작품을 들었고, 작품 제목에 나온 '네루다'라는 이름이 내 입에 착 감기기도 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노..

상식과 교양을 갖춘 정직한 신앙 정한욱 저, '믿음을 묻는 딸에게'를 읽고 제목 (믿음을 묻는 딸에게)과 함께 부제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만 읽어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딸이 질문하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을 빌려 저자가 기독교에 관련된 25가지 주제들을 선별하고 일반교양 수준에 맞춰 풀어쓴 글의 모음이다. '시작하며'에 이어 차례를 보면 저자가 다루는 주제들이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신학 혹은 신앙을 전제로 하지만 (저자는 기독교인이다), 그것을 넘어 인문학, 철학적인 내용까지 두루 섭렵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열려있다. 부제에 등장한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이해할 ..

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아닌 우리 루리 글, 그림, '긴긴밤'을 읽고 밤의 길이는 영혼의 상태를 반영한다. 짧은 밤은 단잠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의미하는 반면, 긴 밤은 불면에 시달리거나 선잠을 자면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긴긴밤을 통과했다는 것은 생사를 오가는 삶의 극한 순간을 간신히 넘어섰다는 표현이리라. 작품 속 주인공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는 이러한 긴긴밤을 숱하게 통과한다. 이 작품의 방점은 단순히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 긴긴밤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는 데에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말이다. 같은 코뿔소끼리도, 같은 펭귄끼리도 아닌, 코뿔소 한 마리와 버려진 알을 든 펭귄 한 마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 이 작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이유다. 코뿔소..

아침과 저녁 사이에 충만하기 욘 포세 저,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고 낯선 작가의 책을 손에 들고 낯선 세상에 처음 발을 내민다. 용기 내어 조심스럽게 첫 발만 디디면 어느새 나는 숙련된 여행자가 되어 이국의 냄새를 맡고 이국의 소리를 듣고 이국의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보면서 모든 시공간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독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다. 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책 한 권으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로 대체된다.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는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과 조금은 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으로 확장된다. 문학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낮은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귀 기울이고 멈추고 가만히 살피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문학은 용..

'밝음'의 문체 최은영 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서양고전문학을 선호하는 나는 한국소설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베스트셀러 위주로 이미 입소문 난 책들을 먼저 살피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수년 전부터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이미 주목받는 차세대 한국 현대소설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책 소개를 보고는 읽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 단편집이었기 때문이다. 단편이 주는 의도적인 불친절함과 불가피한 아련함 (혹은 무책임함)보다는 복잡하고 장황하더라도 깊고 풍성함으로 긴 시간 푹 빠져들 수 있는 장편을 나는 사랑한다. 참고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전문학은 한결같이 장편이다. 나는 책으로부터 여러 방 잽을 맞는 것보다 ..

이미와 아직 사이의 요원한 대화 신국현 저, '유신진화론과의 대화'를 읽고 1. 후기에 앞서 먼저 이 리뷰는 세움북스 대표님의 리뷰 요청을 수락한 이후 기증된 책을 읽고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제가 구매하지 않고 기증받은 책을 리뷰할 때에는 냉철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좀 더 고려해서 반영하곤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번엔 대표님께서 비판적인 시각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기에 저는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조금은 더 객관적이고 조금은 더 냉철하게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뷰는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입장이 반영된 글이라는 점을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시대의 자식이고, 제 글은 제 안에 자리 잡은 세계관, 사상, 신앙 등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

장편의 시작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다시 읽고 물리적인 면에서 이 작품은 분량이 만만치 않다. 단편, 중편, 장편을 나누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난 작품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이 짧은 장편이라고 할 때, 이 작품 '상처받은 사람들'은 긴 장편에 속한다. 분량이 두 배 가량이고, 도스토옙스키 초중기 작품 중 가장 길다 (열린책들 버전으로 600 페이지가 넘는다). 일견 벽돌을 떠올리게 하는 후기작인 5대 장편을 읽어내기 위한 중간단계, 혹은 연습용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후기로 접어들수록 분량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제목 정도는 들어봤음직한 작품들이 모두 후기작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

문학의 힘 그리고 읽고 쓰는 삶 C. S. 루이스 저, '책 읽는 삶'을 읽고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의 이 책은 루이스의 여러 저작으로부터 독서에 관련된 문장들을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루이스의 작품을 두루 섭렵한 독자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제목이나 프롤로그 격의 '엮은이의 글'을 읽으면 곧장 이 책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루이스를 꽤 읽은 나로선 사실 정독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조금은 낚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낚여보는 것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꽤 유쾌한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길에서 며칠간 십여 분 정도씩 읽어나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책이었..

사소하지만 대단한 선택 클레어 키건 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클레어 키건의 문장들은 일견 건조하게 느껴진다. 따로 떼어내서 보면 실제로 그래 보인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단락을 이루고, 그 단락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되면 놀랍게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태연하고 무심하게 보이지만 알고 보니 누구보다 섬세하고 애정 어린 사람의 손길임을 문득 깨달았을 때와 같은 느낌일까. 그러므로 건조하게 느껴진 건 선입견으로 가득한 내 첫인상의 극히 일면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애정 없음일 뿐 저자의 애정 없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려한 수사 없이도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고 갈 수 있는 저자의 저력이라 이해하는 편이 옳다는 생각이다. 또한 중첩되는 문장도 불필요한 문장도 찾아볼 수 없이..

무뎌진 칼의 예리함 클레어 키건 저, '맡겨진 소녀'를 읽고 여백이 많은 글은 독자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 두는 저자의 배려이자 독자가 그 여백으로부터 숨은 의도를 찾아낼 것이라 믿는 저자의 믿음이다. 단문으로 이루어진 글은 속도감을 내기에 적당하지만 그것보다는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독자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길뿐더러 글의 여백을 강화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단문으로 가득하면서 여백이 많은 글을 만났다. 보리스 빅토르비치 사빈코프의 ‘창백한 말’ 이후 처음 느끼는 이 압도되는 기분. 나의 내면은 고요해지고 청명하게 깨어난다. 마치 이제껏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마침내 현실로 돌아온 나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을 검색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단 두 작품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아쉽지만 기다리기..

기형적 자만심의 실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다시 읽고 재독이 주는 유익은 깊이와 풍성함에서 찾을 수 있다. 초독과 재독 사이에 바뀌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일 뿐 책은 그대로다. 그러나 재독 할 때마다 나는 책의 동일함보다는 상이함을 더 크게 느낀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풍성함), 이미 보았던 것들은 재해석되어 (깊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 데에서 경험하는 익숙함과 반가움,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는 낯섦과의 뜻밖의 조우.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놀이가 바로 재독, 곧 깊이와 풍성함의 향연이다. 현재 나에게 그 대상은 도스토옙스키이고, 나는 가능한 멀리 보면서 한 걸음씩 천천히 ..

히스클리프: 폭풍의 근원지 에밀리 브론테 저, '폭풍의 언덕'을 읽고 일주일 남짓 나는 거의 매일 한 시간 가까이 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초 영국 요크셔에 위치한 '워더링 하이츠'와 그로부터 4마일 정도 떨어진 '드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다녀왔다. '워더링 (Wuthering)'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방언이고, '하이츠 (Heights)'는 '높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그 뜻과는 별 상관없이 어떤 장소를 지칭할 때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참고로 내가 거주한 첫 미국은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쉐이커 하이츠 (Shaker Heights)였고, 캘리포니아에 살 때 옆 동네는 아시엔다 하이츠 (Hacienda Heights), 라 하브라 하이츠 (La Habra Height..

익숙한 것들을 기꺼이 껴안는 삶 조르주 페렉 저, ‘보통 이하의 것들’을 읽고 처음 읽는 조르주 페렉. 그에게 ‘일상의 글쓰기’라는 타이틀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 자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소개된, 다분히 실험적이고 집요하여 당황스럽기조차 한 그의 글들은 넌지시, 그러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익숙한 것들, 대부분의 일상을 이루지만 익숙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어느새 일상에서 탈락되고 배제되어 버린 그 소중한 것들을 다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후반전이 빛날 수 있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내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 장소들, 공간들이 다르게 ..

슬퍼하지 말고 더 사랑하기 김진영 저,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차례가 나온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시간이 덩그러니 적혀있다. 1952년생인 저자 김진영은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2018년 8월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난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의 간은 이미 암덩어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공식적인 진단을 받았던 그날 그는 암 환자가 되었다. 그 후, 1년 하고도 1개월. 비록 건조한 문자로 적혀 있지만, 이 책의 차례는 저자가 암 환자가 되고 암에게 육체를 내어주기 직전까지 그의 숨과 그의 정신을 오..

성경 해석의 또 하나의 좋은 안내서 이상환 저, 'Re: 성경을 읽다'를 읽고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로 나는 그동안 여러 번 더글라스 스튜어트와 고든 D. 피가 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김근주 교수가 쓴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를 추천하곤 했다. 이제 한 권 더 늘었다. 바로 이 책, 이상환 목사가 쓴 'Re: 성경을 읽다'이다. 이 세 권을 읽고 본격적인 성경 읽기에 들어간다면 주문 외우듯 수십 번 성경만 통독한 어르신들이 닿지 못한 깊이까지 이해하고 건전하고 건강하게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족과 함께 최근 4년간 성경을 세 번 통독하고 나니 올해부터는 약간의 갈증이 생겼었다. 내년부터는 조금 더 깊고 넓게 성경을 읽고 싶어서 최근에 나는 그 해..

존재와 인식의 다리 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읽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까? 김춘수의 '꽃'에서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그는 그저 하나의 몸짓일 뿐 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야만 한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일까? 타자에 의해 이름이 불리는 존재만이 비로소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된다는 말일까? 나는 이 시에서 '이름'을 '언어'로 바꿔본다. 그러면 언어는 자연스레 무게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곧 존재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잇는 다리의 무게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겠지만, 작품 속 ..

어린아이를 향한 도스토옙스키의 시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예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초대된 아이‘를 읽고 1876년 '작가 일기'에 실린 이 짧은 소설은 어린아이를 향한 도스토옙스키의 따스한 시선을 담고 있다. '뭐라고? 도스토옙스키의 따스한 시선이라고?!', 하며 놀랄지도 모르겠다. 늘 광인의 변주곡 연주하길 즐기며, 지극히 통속적인 상황에서 지극히 심오한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내는 그에게서 외과의사의 메스 같은 날카로움이나 냉철함이 아닌 햇살 같은 따스함이라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그건 도스토옙스키를 절반도 모르기 때문에 넘겨 짚은 성급하고 경솔한 추측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외과의사의 메스이기만 했다면..

타자를 파괴하는 구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온순한 여자‘를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기발함이랄까 기괴함이랄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번엔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 아내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상념에 잠긴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섬뜩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1876년 '작가 일기'에 발표되었던 이 작품도 결코 호러물로 전개되지 않는다. 상황보다 사람, 그리고 사람의 외면보다 내면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행스러운 건, 적어도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분신‘이나 ’약한 마음‘의 주인공처럼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증의 정도는 약한 편이라 할 수 있..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는 낙원, 그리고 그것의 한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우스운 사람의 꿈’를 읽고 1877년 '작가 일기'에 수록된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우스운 사람이다. 사람들은 요즈음 나를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에 읽은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 작품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다시 읽은 '분신'의 골랴드낀이나,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은 '약한 마음'의 바샤, 그리고 '뽈준꼬프'의 뽈준꼬프까지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뿐, 소외되고 단절되고 자기 안에 갇혔다는 점에서 이 모든 인물들은 도스토옙스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