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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돈, 그리고 인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죽음의 집의 기록‘을 다시 읽고

4년 만에 재방문한 ‘죽음의 집의 기록’은 여전히 서사가 부재했다. 게다가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기구한 삶을 모르는 독자가 아니었다. 내게 호기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죽음의 집에서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이 도스토옙스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병렬식으로 감옥 생활을 소개하는 이 책을 끝까지 집중해서 다시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열 시간 정도 이 책과 씨름하면서 드디어 어젯밤 마지막 페이지를 탈환했다. 진정 도스토옙스키 마니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호기심이 사라진 내 눈에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어쩌면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인 건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고, 이 작품의 맥락에 비춰본다면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 초반부터 등장하는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도스토옙스키는 자유와 돈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우선 자본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재독 하는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과 돈을 가진다는 것 사이의 틈이 더 크게 보였다. 요컨대 돈은 어떤 형태의 자유일 수 있지만, 자유는 결코 돈일 수 없다는 것. 자유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돈과 연결된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나를 비교하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콘텍스트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

돈이 많다는 말의 의미를 먼저 짚어본다. 많다는 건 주관적이다. 그러나 나보다 적은 돈을 가진 사람과 비교할 땐 객관적이 된다. 또한 많다는 건 상대적이다. 그러나 나보다 못 가진 사람과 비교할 땐 절대적이 된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때 인간은 희열을 느낀다. 힘을 느낀다. 을은 갑이 되고, 인간은 신이 된다. 그러나 그 신은 반쪽짜리다. 언제나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은 다시 인간이 되고, 갑은 다시 을이 된다. 마침내 복잡한 사다리 꼴의 위계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이런 무한반복 속에서 많은 경우 인간은 자기 객관화에 이르기도 하고, 그 반복이 인생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어느 정도 초월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의 인간들은 그 무한반복을 끝내기 위해 극단으로 나아간다.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가지면 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은 한낱 약한 인간의 합리화일 뿐이라고 단정하고 절대 강자의 자리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돈의 논리이고 돈의 힘이며 돈의 세상이다. 

그렇다. 돈은 비교할 수 있는 물질이다.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시베리아 옴스끄 감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텍스트가 아닌 그 텍스트가 나온 콘텍스트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감옥 안에서 돈의 소유는 불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덧 관습이 되어버렸고 죄수들은 법이 아닌 그 관습에 따라 유형 생활을 해나간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자체가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나오게 된 문장이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자유는 이미 자유가 억압당한 상황에서 유형수들이 불법적으로 간신히 누릴 수 있는 손바닥만한 자유에 해당될 뿐이다. 그러므로 돈과 자유의 관계를 맥락과 상관없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에 곧바로 적용하게 되면 뜻하지 않은 오해는 물론 과장되고 불필요한 사유까지 하게 되는 역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내 지론이다. 

돈과 달리 자유는 물질이 아닐뿐더러 물질로 변환할 수도 없다. 즉 살 수도 팔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옴스끄 감옥 안에서는 자유가 돈으로 측정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돈을 많이 가진 자는 남들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감옥 밖에서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은, 나름대로의 위계가 잡혀 있었던 것이다. 감옥 밖에서는 그렇게 목에 힘을 주는 자를 상대하지 않으면 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면 되지만, 감옥 안에서는 불가능했다. 다른 선택권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은 더욱 선명해지고 단순하게 보일 정도로 정직하게 드러나게 된다. 화자는 그런 유형수들로부터 허세를 읽어낸다. 강한 자존심도 읽어낸다. 실제로 그들은 가혹하고 무자비함을 겸비한 채 덜 가진 자들, 힘없는 자들을 착취했다. 손바닥만한 자유를 가진 자들이 모였는데도 그들은 상석을 차지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상대적 약자를 더욱 짓밟았다. 감옥 안이나 밖이나 인간이 모인 자리는 결국 인간이 모인 자리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간의 한계랄까 하는, 그리고 나도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낯 뜨거운 민낯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나를 더욱 넋이 나가게 만드는 사례도 보았는데, 마치 자기는 당연히 강자의 억압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자유라는 것은 자기에게 허락된 게 아닌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화자는 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아가며 상대적으로 대접받는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그들의 심리를 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움직이는 건 노예근성인 것 같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친절과 돈이 아닌 듯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자유란 어떤 것인지 등의 기본적인 계몽이 필요한 것 같았다. 뼛속까지 스며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관에 함몰된 인간의 모습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화자는 책의 곳곳에서 언급한다. 과연 유형 생활이 죄수들의 교화를 얼마나 이뤄낼지 의문스러워한다. 많은 부분 공감이 갔지만, 특별히 우려 깊은 마음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바로 이들의 존재였다. 이들은 과연 감옥 밖으로 다시 나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 교화라는 단어가 이들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껍데기의 말일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기력함을 느꼈다.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 곳에 가두어두고 자유를 억압해 가며 중한 노역을 부과하고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에 제한을 주는 조치들이 과연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에겐 이 죽음의 집에서의 경험이 평생 만나지 못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는 소중한 가치를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하는 화자는 곧 도스토옙스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 그의 후기작에서 빛을 발할 여러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심리 묘사가 깊어지고 예리해진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감옥 안이었다는 사실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론 원하지 않는 순간들이 그토록 원하던 것들을 우습게 가져다주곤 하는 것이다.  

화자는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하며 이르띠쉬 강변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그 강변에서만이 신의 세계가, 순결하고 투명한 저 먼 곳이, 황량함으로 신비스러운 인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 했다. 아마도 화자는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자유와 구원의 순간을 예감하고 미리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눈을 감으면 이르띠쉬 강변에 서서 비스듬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도스토옙스키가 보이는 것 같다. 그 틈새의 순간들은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다듬고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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