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석영중 저, ‘인간 만세!’를 읽고 일부러 읽지 않았다. 비록 어설프고 부족할지라도 내 방식대로 해석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내 책에 그대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공인된 석영중 교수의 밀도 높은 해석 (바로 이 책, ‘인간 만세!’를 말한다)을 미리 읽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 책을 쓸 때 그 해석을 그대로 흉내 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는 내 책을 영원히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안도와 함께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마추어인 나의 해석이 프로 중 프로인 석영중 교수의 해석과 비교해서 덜..
텃밭과 정원, 일상과 그리움 카렐 차페크 저,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고 저는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과학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생물학자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어온다. 정확한 질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 엉뚱한 질문을 해오곤 한다. 경험상 그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내가 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질병이나 암 치료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 (전 사람이 아니라 생쥐로 실험한답니다! 수술하다가 실수해도 고소당하는 일은 없어용). 둘째, 내가 수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의 건강관리에 대해 묻는 사람들 (개 품종과 이름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다 안..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남으로 채우는 마쓰시에 마사시 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혼자 사는 삶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언제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혼자일 때의 자유를 잘 알고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슴 한 편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찾아내고 또 사수하려고 애쓴다. 물론 혼자 사는 삶과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은 내게 있어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교감과 감사 켄트 하루프 저,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지도 이미 오래된 두 남녀의 교감. 너무 늦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용기 내어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행복을 찾아나선 것일까. 어느날, 배우자를 잃은 지 한참 지난 칠십 대의 애디 무어는 같은 상황에 있는 이웃 루이스 워터스를 찾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섹스 이야기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애디는 그런 루이스를 눈치채고 말한다.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문학의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준 작품 마쓰이에 마사시 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평생 잊히지 않을 작품.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 곁에 두고 자주 읽으며 필사하고 또 외우고 싶은 책. 그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혹은 무인도에 가게 되더라도 가장 먼저 챙길 열 편의 작품 리스트에 당당히 오른 책. 아, 이런 축복이 또 나에게 주어지다니! 기발한 발상도,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 그러나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고 내 눈과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아버린 글의 전개는 작품을 읽는 내내, 그것도 장장 400 페이지에 걸쳐 지속되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어퍼컷처럼 체중을 실은 큰 한 방은 없지만, 무수히 많고 작은 잽들로 독자를 압도시키고, 나아가 중독까지 시켜버리는 ..
늦은 오후 햇살에 비친 일상의 긴 그림자 가즈오 이시구로 저, ‘녹턴’을 읽고 비록 나지막하지만,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작은 단편집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 하나다. 다섯 내러티브, 다섯 내레이터, 그리고 한 명의 작가. 이 엄연한 사실을 주지하기라도 하듯, 다섯 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색과 같은 톤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목소리다. 묻히기 쉬운, 마치 읊조리는 듯한 그의 작은 목소리를 알아챈다는 것은 곧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낸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 생각한다. 그렇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는다는 건 평범한 일상에 녹아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깃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의 가즈오 이시구로 전집 읽기의..
사도신경에서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김진혁 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를 읽고 저자 김진혁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그가 해제를 담당했고 칼 바르트의 절친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일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책을 놓칠 수 없었다. 그 책을 통해 문학 속에 녹아든 신학을 맛볼 수 있었으며, 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 아닐까 하는 현재의 내 지론에도 이르게 되었다. 특히 김진혁의 해제는 도스토옙스키를 해제한 투르나이젠에 대한 해제, 혹은 두 거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해제라고 볼 수 있기에 제삼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두..
마음 나쓰메 소세키 저, ‘마음’을 읽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품은 자를 확신으로 이끌었다가도 이내 무지의 바다에 빠뜨려 당황스럽게 하며, 알아챈 자 역시 동일한 미궁에 빠뜨리고 마는 것.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이며 정체를 알 수 없어 그 존재 자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 그러나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제목이기도 한 바로 그것. 마음. 읽는 내내 복잡한 마음이었다. 작품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작품을 읽는 내 마음만 복잡했을 뿐이다. 마치 확신과 무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나는 또다시 내 안에서 깊은 모순을 느꼈고, 죄책감을 느꼈으며, 속죄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
일상을 시로 번역하기 크리스티앙 보뱅 저, ‘환희의 인간’을 읽고 모든 단어와 문장이 반짝거리는 글. 크리스티앙 보뱅에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표현도 식상하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보뱅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왜 여태까지 그를 몰랐을까. 이제서라도 그를 알고 그의 글을 읽게 된 걸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과연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묻게 된다. 괜한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 나서는 글 사냥꾼이 되고 싶은가 보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 문학을 가까이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문학은 내 삶의 여백을 ..
영원한 결핍에서 영원한 충만함을 크리스티앙 보뱅 저,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고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책이다.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던,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한 여자, 지슬렌을 사랑했던 보뱅의 독백. 그녀를 만나고 그녀가 죽기까지의 16년 동안 보뱅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고 고백한다. 그가 온종일 하던 진짜 일은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독에 강했던 보뱅을, 오랜 기간 자족한 채로 조용히 혼자 지낼 수 있었던 보뱅을 유일하게 깨운 지슬렌. 보뱅이 가졌던 고독의 힘을 무너뜨리고 무장해제시켜 사랑이라는 세상의 문을 열고 자발적으로 들어가게 했던 그녀. 그는 감사한다. 이 생에 머무르며 현재라는 순간을 사용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것..
문학: 인생과 신앙의 반려자이자 도우미 이정일 저,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를 읽고 이 책은 전작 (이정일 저,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과 맥을 같이 한다. 저자의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오랜 신앙적 경험을 토대로 문학이 인생과 신앙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차근차근 친절하게 들려준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특정한 아홉 편의 문학 작품을 선정하여 그것들을 중심으로 각 장을 구성한 것이다. 놀랍게도 선정된 아홉 작품은 모두 현대 문학에 속한다. 가장 오래된 작품이 원서로는 1995년 작이다. 현대 문학보다 고전 문학을 더 사랑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지만, 고전을 잘 읽지 않는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춘 저자의 배려가 느껴져 나의 실망은 쉽게..
읽기: 무용성의 유용성 서자선 저, ‘읽기:록’을 읽고 ‘읽기’는 크게 두 번에 걸쳐 우리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첫 번째는 언어와의 첫 만남에서다. 우리는 언어의 유입으로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읽을 줄 알게 된다는 건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나만으로 가득 찼던 상상의 세계에서 타자와 세상이 함께 존재하는 풍성한 세계로 진입한다. 그 세계는 언어의 세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언어의 법을 배우고 복종하고 또 내 것으로 삼게 된다. 두 번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과도 같은 인생의 전환점에서다. 이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을 만나게 되는 시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 이전에도 글을 읽긴 읽었으나 그건 읽은 게 아니었다는 고백을 하게 될 정도로 ..
읽기와 쓰기: 부재와 결핍 속에서 피어난 사랑 크리스티앙 보뱅 저,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고 우리는 모두 태어남과 죽음 사이를 살아간다. 유년기를 거치며 성년기로 나아간다. 자크 라캉은 ‘에크리’에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재해석하며 ‘언어의 유입으로 인한 주체의 탄생’을 말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환영일지도 모를 그 모습을 따라 상상으로 자아를 구성하는 단계 (상상계)에 머물던 아이는 어느 날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하면서 새로운 세계 (상징계)로 진입하며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상징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이자 언어로 이루어지고 언어를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모든 관계를 맺는 세계다. 인간은 언어에 노출되고 그것의 법에 복종하면서 비로소 주체가 되는 ..
시대적 정황이 문학의 상상력을 입을 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어’를 읽고 실화라고 운을 떼며 소설의 문을 여는 이 작품의 화자는 어느 날 이반 마뜨베이치 부부와 함께 악어를 구경하러 아케이드를 찾는다. 한 사람 당 25꼬뻬이까의 관람료까지 내며 들어간 전시장에서 그들을 맞이한 악어는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얕은 물 웅덩이 속에 덩그러니 드러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모두를 실망시켰다. 특히 악어 구경을 가장 먼저 제안했던 이반 마뜨뻬이치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로부터도 관심은커녕 혐오스럽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자연스레 일행은 그 옆에 전시된 원숭이 우리로 재빨리 이동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
재앙 속에 빛난 고결함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몽 같은 이야기’를 읽고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도 분량으로 따지자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호흡이 긴 장편을 선호하는 취향 덕에 그의 작품 중 장편을 먼저 다 읽고 이젠 중단편을 아쉬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하나씩 까먹고 있다. 쉬이 없어질까 두려워 맛난 간식을 아껴먹으려는 아이처럼 나는 책장에 꽂힌, 의도적으로 아직 읽지 않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들을 일주일에도 여러 번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이전엔 몰랐다. 독서도 즐겁지만 아끼는 것도 즐겁다는 것을.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 중단편들은 책 한 권에 여러 작품이 실려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색을 감히 사랑하는 독자로서 나는 그의 작품 읽기에 익숙하다. 하지만 자연스레 빨라지는 속도에 그..
기억과 망각의 힘 그리고 신비 가즈오 이시구로 저, ‘파묻힌 거인’을 읽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특히 노화, 질병, 사고로 인한 망각은 인생의 무거운 추가 되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 친지들을 말 없는 무게로 짓누른다. 개인의 망각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작게는 가족 문제로, 크게는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될 여지를 가진다. 한 사람의 망각은 여러 사람의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망각이 언제나 부정적인 건 아니다. 사실 우린 망각을 일상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경험하기에 그나마 지금과 같은 Norm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뇌는 사고의 중추를 담당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몸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 필요 (혹은 생존 본능)에 따라 우리 뇌는 기억을 조작하기도 삭제하기도 ..
예술가 헤세 헤르만 헤세 저,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고 헤세의 작품에는 유독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 주인공이 예술가인 경우도 있고, 그림이나 음악이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헤세 자신이 예술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이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헤세가 쓴 음악에 관련된 글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엮은 책이다. 그가 쓴 소설의 일부분이 소개되기도 하고, 그의 에세이, 시, 편지, 서평, 메모 등의 짧은 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에 관련해서도 이런 책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헤르만 헤세, 그림 위에 쓰다’ 정도로 말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그의 여러 작품을 훑어보며 예술과 관련된..
상처받은,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고 최근 몇 년간 도스토예프스키를 후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열 편 이상 쭉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버렸다. 아니, 매료되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읽은 그의 작품보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의 분량이 현저하게 적어져 버린 지금, 남은 작품들을 아껴서 읽게 되고, 읽을 때면 사뭇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되는 나를 보면 나는 단순히 한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끼고 경외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하는 독자가 되어버렸다.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
한 가문의 몰락, 그리고 그것의 의미 토마스 만 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천 페이지를 빼곡히 수놓은 문자들은 무덤덤하게도 한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1877년 열네 살의 나이에 티푸스로 죽은 마지막 아들 하노에 이르기까지, 사 대에 걸쳐 진행된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 작품은 하노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었던 1835년, 하노의 증조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1세의 말년을 비추면서 문을 연다. 그들은 최근에 근사한 저택을 새로 구입했다. 경사였다.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어떤 가시적인 열매는 이어지는 일의 내리막길과 종종 맞물리며 나타나는 법. 표면적으로는 기뻐해야 합당할 일 앞에서도 당사자들은 마음 어딘가에 어둡고 묵직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끼며 ..
자본주의의 기계성 뒤에 숨은 인간의 이기성,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인간다움 존 스타인벡 저, ‘분노의 포도’를 읽고 독서란 일차적으로 유희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유희가 목적인 독서는 그것이 닿을 수 있는 깊이의 반의 반도 이르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충분히 즐기면서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미만이 아닌 깊이와 풍성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나는 가끔 독서에도 비장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이때 독서는 단순한 ‘읽기’가 아닌 ‘이겨내기’의 의미를 띠고, 책은 ‘노는 장난감’이 아닌 ‘극복할 대상’이 된다. 언젠가부터 휴가를 맞이할 때면 평소엔 엄두를 못 내던 장편소설을 손에 든다. 이른바 ‘벽돌 깨기’다. 처음엔 백 퍼센트 도전정신으로 시작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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