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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파괴하는 구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온순한 여자‘를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기발함이랄까 기괴함이랄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번엔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 아내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상념에 잠긴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섬뜩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1876년 '작가 일기'에 발표되었던 이 작품도 결코 호러물로 전개되지 않는다. 상황보다 사람, 그리고 사람의 외면보다 내면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행스러운 건, 적어도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분신‘이나 ’약한 마음‘의 주인공처럼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증의 정도는 약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이 남자 역시 ‘분신’의 주인공이자 모든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 광인의 원형인 골랴드낀의 연장선에 있다. 한 가지 큰 차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이 가진 파괴적인 자폐 기질의 총구가 자신이 아닌 아내를 향한다는 점이다. 이 독특한 부분에 대해선 조금 더 풀어볼까 한다.

먼저 주인공의 자폐 기질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자폐'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폐증 환자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차라리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병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머릿속에 그리면 얼추 비슷하게 우리 주인공의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물, 아니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자기 안에 갇히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을 때 우린 프로이트가 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들러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도스토옙스키가 창조한 작품 속 인물의 개별적인 내면으로 들어가 두 눈을 뜨고 조용히 그 까발려진 민낯을 관찰한 후 나를 포함한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고찰하는 데까지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작품 속에서 드러난 자폐의 이유는 그가 장교였을 때 벌어진 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그는 그 사건 때문에 은퇴하게 되는데, 요컨대 체면 혹은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내면의 깊은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19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 남자들에겐 명예가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푸시킨이나 톨스토이 작품에서도 명예라는 단어는 심심찮게 다뤄진다. 20세기말에 한국에서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내 눈에는 조금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러시아 남자들은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상황을 극도로 거리꼈고,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당당히 목숨을 걸고 결투를 신청하는 게 남자다운 행동으로 여겨진 듯하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의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고, 이는 은퇴 이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회자되었다. 그는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던 결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사건 이후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은퇴 이후 그는 전당포 주인이 되었다. 그는 이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소신 있는 인물인 듯하다. 과거에 결투 신청을 하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었을 때에도 스스로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점이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골랴드낀의 여러 분신들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며 자아의 분열과 상실을 겪는 인물들과는 달라 보인다. 물론 이래도 저래도 결국 자기 안에 갇히는, 즉 병적인 자폐의 기질을 보이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이 작품 속에선 주인공의 이러한 소신이 아내의 자살을 유도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장이 열등감의 표출이듯,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들은 소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자존심을 부리는 과도한 몸부림의 일환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다. 그 소신이란 게 객관성과 합리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건강한지가 관건이다. 

어느 날 전당포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제목에서 가리키는 '온순한 여자'이자 머지않아 그의 아내가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될 인물이다. 가난한 이유로 가치 없는 물건까지 들고 와 돈으로 바꾸려는 그 여자에게 주인공은 마음을 두게 된다. 뒷조사를 하여 그녀의 생활 사정을 알게 된다. 이미 두 아내를 저승으로 보내고 세 번째 아내로 그녀를 점찍고 접근하는, 나이 쉰 살의 한 뚱뚱한 상인이 그녀에게 사탕 한 근을 사가지고 찾아가던 날 저녁, 우리의 주인공은 호기롭게도 그녀의 하녀를 불러 그녀를 그 자리로부터 빼낸다. 그리고 청혼을 한다. 스스로의 말을 비굴할 정도로 과도하게 반추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의외로 (주인공 생각에는 그녀가 고민할 가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상인과 자기를 감히 비교하다니,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승낙해 버린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 가난한 여자에게 나름대로의 구원을 베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구원이 과연 누구를 위한 구원이었던가?, 아니 누구를 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차라리 그녀가 그 상인과 결혼했더라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인이 그녀를 찾아갔던 날, 그가 그녀를 빼낸 행동은 결국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파멸로 가는 샛길을 터준 셈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작품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방금 전에 자살한 아내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생각에 빠져있는 장면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방금 겪은 아내의 자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결혼 후 그는 아내가 된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한다. 그녀를 대할 때 그는 주로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다른 류의 사람이자 수수께끼 같은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어리석은 수작도 부리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렇게 하는 행동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듯하다. 마치 그녀를 앞에 두고 원맨쇼를 하고 있는 듯해 보일 정도다. 자존감이 극도로 낮은 자에게서 곧잘 나타나곤 하는 행동양식, 즉 허세일 것이다. 이 허세의 일부는 아마도 그가 그녀에게 구원자였다는 전적이 스스로에게 훈장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그녀는 거의 노예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느닷없이 전당포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기도 하고 외출을 오래 하기도 한다. 대화가 차단된 마당에 그녀가 조용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 역시 그에 대한 뒷조사를 해서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비겁자로 회자되기 시작했던 그의 이력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가 자는 동안 권총으로 그를 살해하려는 시도도 한다. 둘 중 누군가가 죽어야만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마도 그녀는 갈 데까지 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자신을 죽이게 되지만 말이다. 그녀는 점점 창백해져 갔고 또 쇠약해져 갔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리의 주인공은 자기 눈앞에의 장막이 걷혔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그는 그녀에게 곧장 다가가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녀 옆에 앉아 드디어 대화를 건넨다. "우리……저……뭐든 이야기를 합시다!" 그리고 그녀의 발 밑에 허물어져 발에 입을 맞추는 등 환희에 찬 상태로 말한다. "……이렇게 일생 동안 당신을 숭배하게 해주오……" 그는 히스테리 같은, 혹은 열병에 걸린 것처럼, 혹은 광기에 찬 상태로 그녀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게 무심결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날 내버려 두리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은 마치 단검으로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그동안 괴로웠다는 것, 지금도 괴롭다는 얘기를 했다. 다음과 같은 말도 한다. "나는 당신의 충실한 아내가 되겠어요…… 나는 당신을 존경할 거예요……" 그는 미친놈처럼 그녀를 포옹한다. 그리고 그가 잠시 볼 일을 보러 잠시 집을 비우게 되는데, 그가 집에 돌아오기 10분 전쯤에 그녀는 손에 성상을 쥐고서 돌연 창밖으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회심 (?)은 너무 늦었던 것이다.  

자살한 아내를 테이블 위에 두고 있는 주인공.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를 눈먼 여인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그녀에게 어떤 천국을 가져다주려 했는지 아냐고 묻는다. 그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어리석었다는 말을 퍼붓고, 자신의 진심을 왜 이해하지 못했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누가 진정 어리석었는지, 누가 진정 눈이 멀었던 것인지 말이다. 또한 아내가 자살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나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아닌 아내를 향한 원망으로만 가득 찰 수 있는지 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가 아내의 발아래에 엎드려 키스를 하며 사랑을 맹세하는 행동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나는 의심스럽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라는 사람을 품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안에 갇혀 있을 뿐이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 고백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주인공이 그녀와 결혼한 사건이 비극의 시작이라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유일하게 잘못한 게 있다면 온순했다는 점일 텐데, 온순하다는 게 잘못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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