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치게 충실한 설명, 여백의 부재 이승우 저, ‘생의 이면’을 읽고 너무 늦게 읽은 탓일까, 아니면 아직도 이 책을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몇몇 지인들에게 인생의 책으로 꼽히곤 하는 이승우의 ‘생의 이면’을 마침내 다 읽었지만, 나는 이렇다 할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기대가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실망이 큰 걸 보면 말이다. 작가의 기독교 세계관이 녹아든 이 작품이 내게는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니,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듯 싶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뉘앙스가 반영된 문학이 내겐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기독교..

비유가 담고 있는 깊고 풍성한 진리의 말씀 맛보기 김호경 저, ‘예수가 하려던 말들’을 읽고 문장은 짧고 간결하며 거침이 없다. 그래서인지 힘이 느껴진다. 읽고 나면 마음도 시원해진다. 권력 혹은 재력의 눈치를 보느라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문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극단적인 주장을 펴지도 않는다. 단호한 문장들 뒤에 묻어나는 저자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지 않고 끝까지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호소력이 짙다. 이 책은 자연스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진리로 둔갑한 비진리의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급진적인 진리를 말하던 그 누군가를. 예수다. 예수일 것이다. 저자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예수의 말과 닮았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들은 많은 비유로 이루어졌다. 일상을 소재로 하지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창백한 마음 보리스 빅토르비치 사빈코프 저, ‘창백한 말’을 읽고 첫 페이지만을 읽고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어느 정도 읽어본 시람에게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나는 이를 감히 축복이라 부른다. 운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오래토록 옆에 두고 자주 펼쳐보며 참조해야 할 작품이라고 믿게 된다. 독자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말이다. 너무 많이 봐서 닳게 될 경우를 대비해, 혹시라도 절판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미리 여러 권을 소장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추천사를 쓴 정지돈 작가가 인생 소설이라 하고 필사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아끼는 이유를 알 듯하다. 처음 만난 사빈코프의 글은 혁명과 테러의 중심에 선 주인공의 일기 형..

난해하고 낯설지만 매력적인 작품 윌리엄 포크너 저, ‘곰’을 읽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미국 현대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윌리엄 포크너를 나는 이 작품 ‘곰’으로 처음 만났다. 포크너보다 5년 뒤에 태어난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나 ‘생쥐와 인간‘에서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기를 다뤘다면,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그보다 수십 년 앞선 19세기말, 노예제도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현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시대상을 담아낸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은 영원성을 갖게 마련이고, 문학사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두 작가는 모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포크너는 1949년, 스타인벡은 1962년에 상을 받았다. 참..

불안, 외로움, 고독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내면의 성장 정지우 저,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읽고 페이스북을 통해 정지우 작가를 알게 된 지 5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그의 저서를 손에 들었다. 왜 이렇게 늦어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그가 페이스북 친구 중 가장 성실하게, 그것도 시선을 끌 만한 사진이나 단 몇 문장만으로 끝나는 글이 아닌, 몇 단락으로 이루어진, 완성도가 높은 데다 진정성까지 깃든 글을 포스팅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점에서 답을 찾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이미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그의 글을 충분히 읽고 있다고 판단했었나 보다. 지난 5년간 그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그러는 동안 변호사라는 직업도 가졌다. 갓난아기였던 그의 아이도 제법 자랐을 것이다...

묻고 따지기, 그리고 답이 되기 김기현 저, ‘욥, 까닭을 묻다’를 읽고 작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글쓰기 선생이자 철학과 인문학에 능통한 목사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김기현은 2016년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를 쓰며 자신이 통과했던 고난을 자발적으로 재방문하고 그로 인해 다시 아파하다가 끝내 치유를 경험했다. 하박국서를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개별적인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이루고 초월적인 하나님 관점으로 자기 삶을 관찰, 성찰한 뒤 고난 받은 경험이 있는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고 그 고난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의 열매를 따먹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통찰을 이끌어냈다. 그는 그 시기를 죽음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때로 고백한다. 아마 그의..

한 편의 그림이 남는 작품 나쓰메 소세키 저, ‘풀베개’를 읽고 한 작가의 작품을 짧은 기간 다섯 편이나 읽게 되면 문체랄까 사상이랄까 하는 그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충분히 감지하게 되고 익숙해지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도스토옙스키도 이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집 읽기를 시도했던 헤세, 이시구로, 루이스도 내겐 마찬가지였다. 처음 예외를 만났다. 바로 나쓰메 소세키다. ‘풀베개’로 그를 다섯 번째 만났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섯 번째 동명이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쓰메 소세키 전집 읽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다섯의 동명이인 중에 나는 다섯 번째 나쓰메 소세키를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새로 구입할 작정이다. 문학작품을 수백 ..

나의 길, 우리의 길 정여울 저, ‘헤세로 가는 길’을 읽고 개별적인 모든 상황 속에는 보편성이 숨어 있다. 우리가 낯선 타자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그 무엇.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여울이 걸은 헤세로 가는 길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정여울이라는 고유한 개별자가 걸은 길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 걸은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찰, 성찰, 통찰이 작가를 통과하면 글을 남긴다. 그 글은 가끔 독자를 관통하며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아주 가끔 그 생채기는 독자의 생각과 마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기어이 독자를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독자가 작가일 경우엔 또 하나의 글이 탄생하게 된다. 이 책은 독자 정여울이 읽은 헤세의 글들이 작가 정여울의 ..

태풍 앞에서 미적대는 인생 나쓰메 소세키 저, ‘태풍’을 읽고 태풍은 아무래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고,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그것이 한 장편소설의 제목으로 선정된 경우라면 독자는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는 왜 이 작품 제목을 태풍이라고 했을까. 거센 태풍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작품엔 충격적인 사건이나 상황이 전무하다. 소설이라는 특별한 세계에선 꽤 흔해 빠진 살인, 자살, 치정, 불치병, 혹은 출생의 비밀도 없다. 뚜렷한 위기, 절정, 해소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전체를 꿰뚫는 스토리텔링도 없다. 작품 평을 하자면 밋밋하다 못해 고요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단, 이러한 결론은 소설 표면에 드러난 정황으로만 볼..

무엇이 성장인가 나쓰메 소세키 저, ‘산시로’를 읽고 나쓰메 소세키는 다면체의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인 것 같다. ‘마음’에서 만났던 그의 글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실망감으로도 상실감으로도 다가왔다. 물론 그의 탁월한 필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나는 ‘산시로’에서 또 다른 모습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다는 '마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결코 같지 않다. 만약 작가의 이름을 손으로 가려놓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세 작품이 서로 다른 세 작가로부터 쓰인 거라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등장인물 이름이 제목으로 된 작품을 좋아한다. 이름은 강한 메시지를 표출하지 않는다. 덕분에 책을 읽기 전 선..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과 인간세계 나쓰메 소세키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나는 고양이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화자는 놀랍게도 고양이다. 상식적으로는 현실세계 고양이가 말을 할 리 없다. 게다가 장르가 소설이니만큼 이 고양이는 작가의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의인화된 매개체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발적인 첫 문장 (알다시피 제목도 같다)으로 운을 떼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과연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우물 안에선 우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판단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면 어떨까. 우물을 인간세계로 대치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세계 안에선 인간세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이를 조금 더 ..

현장이 가지는 힘 조지 오웰 저,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을 읽고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이자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제목에서 묘사하듯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의 빈민가, 그리고 그 안에서 전전긍긍하며 무의미한 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한다. 르포르타주는 아니지만 이 책에 보고된 정보들은 모두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지극히 사실적이다. 실제로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를 체험하고 그 체험담을 소설로 풀어쓴 글이기 때문이다. 300 페이지 남짓 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가난과 궁핍, 그 가운데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담고 있다. 세상엔 직..

첫인상과 같은 첫 문장: 소설가는 따라갈 뿐 오가와 요코 저,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을 읽고 소설에서 첫 문장은 사람의 첫인상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첫인상이 좋아도 지나고 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듯, 첫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그다음 문장들이 형편없으면 그 소설은 요란한 빈 깡통, 혹은 서두에만 잔뜩 힘이 들어간, 허세에 부푼 초보 작가의 어설프고 허술한 글이 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사실 둘은 상반되지도 않는다. 첫인상만 좋고 본모습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유형을 경계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코 첫인상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며, 첫인상이 그리 ..

시를 통해 인생을 훑다 신형철 저, ‘인생의 역사’를 읽고 평론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경직되는 기분을 느낀다. 논문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에서 가지는 위상과 평론이 문학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내겐 엇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평론은 어렵게만 느껴지고, 고난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가. 소설이 시보다 좀 더 대중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시는 이해하기 위해라기보다는 느끼기 위해 읽는다는 말까지 감안한다면, 나에겐 시 역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저 너머의 무엇인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든 책은 무려 시에 대한 평론집이다. 시와 평론의 이중창이라… 이 둘의 무게만 생각하면 나는 압사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바로 이 책 저자..

때마침 내린 단비처럼 내게 다가온 글쓰기 선생님 안정효 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고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글쓴이가 전면에 등장하여 자화자찬이나 연대기 형식의 지루한 자서전을 읊어댄다면 어떤 독자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글쓴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정보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글 역시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에세이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글쓴이는 가능한 자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위를 지혜롭게 조절해야 한다. 자신만으로 도배해서도, 자신을 죽여서도 안 된다. 한 편의 짧은 글이 아닌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면 이러한 수위 조절은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까지 내 돈 주고 사서 밑줄 그으..

돈인가, 하나님인가? 폴 스티븐스, 클라이브 림 공저, ‘돈은 중요하다’를 읽고 돈은 신이 아니지만 신과 같은 지위와 능력을 가진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넘어 마치 구원자의 자리까지 꿰찬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 현실이다. 월터 윙크는 그의 탁월한 저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진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폭력’ 임을 간파해내며 사람들 인식 저변에 깔린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구원이 마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막강한 힘 (이라 쓰고 무력, 폭력, 권력이..

미풍처럼 다가온 위로와 격려 김주련 저, ‘안녕, 안녕’을 읽고 “안녕”으로 시작해서 “같이 밥 먹어요, 우리”로 끝나는 책. ‘어서 와, 여기 네 자리가 있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말없이 들어주는 말들’로 읽는 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책. 아무 걱정 없다며 허세 부리지 않고 ‘걱정이 있지만, 지낼만해’라고 말하면서 읽는 이가 주눅 들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책. 이밖에도 제목만 읽어도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열다섯 꼭지의 짧은 이야기가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여백의 힘을 빌려 가볍고도 묵직하게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다. 특히 시와 에세이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글을 좀처럼 당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습기를 많이 먹어 무거워진 마음 빨래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미풍처럼 다가왔다. 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석영중 저, ‘인간 만세!’를 읽고 일부러 읽지 않았다. 비록 어설프고 부족할지라도 내 방식대로 해석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내 책에 그대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공인된 석영중 교수의 밀도 높은 해석 (바로 이 책, ‘인간 만세!’를 말한다)을 미리 읽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 책을 쓸 때 그 해석을 그대로 흉내 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는 내 책을 영원히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안도와 함께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마추어인 나의 해석이 프로 중 프로인 석영중 교수의 해석과 비교해서 덜..

텃밭과 정원, 일상과 그리움 카렐 차페크 저,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고 저는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과학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생물학자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어온다. 정확한 질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 엉뚱한 질문을 해오곤 한다. 경험상 그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내가 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질병이나 암 치료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 (전 사람이 아니라 생쥐로 실험한답니다! 수술하다가 실수해도 고소당하는 일은 없어용). 둘째, 내가 수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의 건강관리에 대해 묻는 사람들 (개 품종과 이름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다 안..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남으로 채우는 마쓰시에 마사시 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혼자 사는 삶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언제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혼자일 때의 자유를 잘 알고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슴 한 편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찾아내고 또 사수하려고 애쓴다. 물론 혼자 사는 삶과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은 내게 있어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