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발생, 성숙, 노화 - 백우인 작가님의 추천사 과학과 신학과 문학까지 겸비하신 분이 추천사를 써주신다면 완벽하겠다 싶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존재할까 싶었던 찰나 백우인 작가님이 생각났다. 생물학뿐 아니라 다른 영역의 과학에도 조예가 깊으시고, 종교철학 전공이신데다 목사 안수까지 받으셨고, 시와 평론까지 쓰시는 분이다. 저서도 세 권이나 된다. 역시 용기 내어 추천사를 부탁드렸고, 마침 관심 있는 분야라 하시면서 원고도 보지 않으시고 선뜻 수락해 주셨다.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시 같은 평론 같은 추천사라 할 만하다. “인간은 인간 이전에 이 땅에 나타난 모든 존재의 끊임없이 지속되는 움직임과 변화의 결과다. 인간은 생명을 향해 약동하는 그들의 바람과 애씀의 열매다. 인간이..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발생, 성숙, 노화 - 오세조 목사님의 추천사 이번 책은 생물학과 기독교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영역을 두루 섭렵하신 분의 추천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팔복루터교회를 섬기고 계신 오세조 목사님이 적격이라 생각했고 용기 내어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역시 원고도 보지 않으시고 승낙해주셨다. 참 감사했다. 은혜라 생각한다.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 과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과학과 신앙에 관한 책을 읽어 보면, 과학 이야기도 아니고 신앙 이야기도 아닌 경우가 꽤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추천사 의뢰가 왔을 때 주저함 없이 승낙했다. 이전에 출판된 저자의 책을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실험생물학자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발생, 성숙, 노화 - 김대수 교수님의 추천사 약 3주 뒤에 출간될 세 번째 저서에 대한 추천사를 거의 다 받았다. 원고를 보지도 않고 나의 부탁만으로 모두 추천사를 흔쾌히 써주시겠다고 하셔서 감동이었다. 내가 그래도 허투루 살지 않은 것 같아서,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책 출간 전에 미리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 그렇지, 이렇게 추천사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책을 출간하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은혜였지, 하는 첫 마음이 회복되어 무엇보다 감사했다. 그리스도인이자 생물학자인 분들이 의외로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실감했다. 아주 옛날에 포항에서 얼굴로만 알고 있던, 현재 카이스트에 재직 중이신 김대수 교수님께 추천사를 의뢰했었다. ..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발생, 성숙, 노화 - 정한욱 선생님의 추천사 어쩌다 보니 세 번째 저서의 1교가 끝났다. 초고 완성에 걸린 시간은 가장 길었는데, 완성 후 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가장 짧은 것 같다. 예정된 출간일이 약 3주 뒤이니 초고 완성 후 약 두 달 만에 책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첫 저서의 제목은 ‘과학자의 신앙공부’였다. 이번 책은 그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뀐 제목 ‘생물학자의 신앙고백’만 봐도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인 이유는 나의 직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신앙공부가 아닌 신앙고백인 이유는 공부를 넘어서 고백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묻도 따지고 답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공..
책 읽기와 책 읽는 습관 "딱히 할 일이 없을 땐 책이나 읽자." 말하긴 쉬워도 행하긴 어려운 일이다. 책 읽는 행위가 어렵다는 게 아니다. 책 읽는 습관 들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저 위의 문장은 독서하라는 가벼운 요청을 넘어선다.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무거운 제안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빈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열 명 중 넷은 동영상을 시청한다. 둘은 게임을 한다. 주로 십 대에서 이십 대 아이들이다. 다른 둘은 목적 없이 이 앱 저 앱 정신없이 오가며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하다. 나머지 둘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멍 때리고 있다. 주로 어르신들이다. 나처럼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지난 8개월 버스 생활 중 딱 한 명 본 적이 있다. ..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감상문에 대한 후기 어젯밤 카뮈의 에세이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감상문을 남기기까지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5년 전 책세상 버전부터 치면 족히 열 번은 넘을 것이다. 단순히 어렵다고 표현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다. 차라리,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다가 맥락을 놓쳐버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놓쳐버릴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 해야 이 에세이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는 게 아닐까. 아, 살아있을 때 이런 글을 만나다니! 반짝이는 문장들의 치명적인 가니쉬는 낯선 이국의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만 보아도 나는 평생 이 글을 떠올릴 것 같다. 티파사, 압생트 등의, 소리 내어 읽으면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읽혀 시적인 음악을 ..
고향: 쓰기 누군가는 붓을 들면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글쓰기를 사랑하며 그것이 일상으로 잦아든 이들은 알 것이다. 글을 쓸 때 느껴지는, 고향에 온 것 같은 그 기분을. 보고 읽는 시간을 맞이하는 순간, 그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 속으로 구원받는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는 글쓰기가 있다. 나의 글쓰기의 팔 할은 절박함이다. 회귀본능이랄까. 연어가 사나운 곰의 손아귀와 아가리를 감내하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는 것 같은 심정이랄까. 나는 그 어느 곳을 가든, 어느 시간대에 놓이든, 무엇을 하든, 글을 쓴다. 때론 휴대전화 속 노트에, 때론 서툰 글씨로 냅킨에, 또 때론 머릿속 노트에 내가 보고 읽은 날 것 그대로의 그 신선함을 간직하기 위해 글자를 채워넣..
보고 읽기 아무 데서나 눈을 감는다고 그곳이 깊은 산중이 되지 않는다. 내면의 고요함은 외부의 고요함이 가져다주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에서도 내면은 소란스러울 수 있고, 북적대는 광장에서도 인간은 고독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건 익숙함의 문제만도 아니다. 간신히 익숙함이 가져다준 안락함은 찰나이고, 우리를 잠식시키는 타성은 영겁이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에서 자기만의 우물에서 벗어나 자신을 타자화하고 객관화하여 가만히 응시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그곳은 깊은 산중이 된다. 관찰이 시작인 동시에 모든 것이다. 나를 보는 것이면 성찰이 되고, 타자와 세상을 볼 줄 알게 되면 통찰이 된다. 관찰은 읽는 것이다. 나를 읽으면 성찰이 되고, 타자와 세상을 읽을 줄 알게 되면 통찰이 된다. 가..
또 읽기와 쓰기 피치 못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 한 일주일에 한두 권의 책을 읽어나가는 습관도 벌써 7년이 넘었다. 백수도 아니고 전업작가도 아닌 내가 하루에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안팎이다. 자기 전 한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다 짬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버스 타고 감사하게도 앉아 갈 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맘 편하게 조금 일찍 가서 기다릴 때마다 나는 글을 쓴다. 어제 마친 과학자의 신앙공부 두 번째 이야기의 7할도 휴대전화에 깔린 노트 앱으로 썼다. 짬 시간에 글을 쓰면 지루하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도 더 이상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나에겐 글쓰기 시간일 뿐이다. 초고를 마치고 나니 이 시간에도 공백이 생겨버린 듯한 기분이다. 어젯밤부터 무엇을 해야..
한 문장의 무게 단 한 문장의 글도 무시해선 안 되는 이유는 그 문장이 거친 수십, 수백 개의 지워진 문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기만의 문체를 갖게 되면 어느 순간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쓸 재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필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전엔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 눈을 뜨기 때문이다. ‘정확한 글’에 대한 인식과 갈망. 이것들이 촘촘한 필터가 되어 한 문장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안정효도 신형철도 강조했다. 좋은 글이란 정확한 글의 다른 표현이라고. 이 명제에 수긍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장에 들어갈 적당한 단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적당한 단어를 찾아서 연결하여 한 문장을 완성하..
문학, 그리고 경이 문학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뜻밖의 변화 중 하나는 예전보다 경이감을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문득 꿈만 같은 기분을 나는 나의 일상 속에서 자주 느낀다. 점심을 먹고 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연구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바라본 연구소와 그 주변 환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웠다. 내가 일하는 곳이,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이런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마치 오늘 처음 깨닫게 된 사람처럼 나는 경이감에 휩싸여 자전거를 멈추고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행의 진미는 낯선 곳에서 불안함 가운데 느끼는 익숙함과 안정감이라고 했다. 일상 속에서 경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익숙하고 뻔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에 빛을 부여하고 그 빛의 ..
빈 시간 빈 시간이 생길 때마다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쫓기던 나날들에는 특히 더 그랬다. 할 줄 아는 것이 학업 혹은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지겨워지거나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무엇이든 자유와 해방을 만끽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해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모든 빈 시간을 자거나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하면서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동도 날씨가 좋아야 하고,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기에 나 혼자 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나는 지금은 아무런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탕진했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깝다는 생각을..
두 권의 책의 개요 재미있게도, 나는 이동 중 혹은 여행 중 글이 잘 써진다. 환기의 효과가 아닐까 짐작해 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동 중’이 아니라 ‘이동 중 잠시 머물 때’라고 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체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길 즐긴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게 많은 것도 다 이런 연유이지 않을까 싶다.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도 해 보지만, 석연찮은 기분은 언제나 나를 따른다. 5박 6일의 짧은 오스트리아 출장 중 앞으로 쓰게 될 두 권의 책에 대한 개요를 일차적으로 완성했다. 텅 빈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셈이다. 내가 아직은 ..
다시 책으로 일상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며 내 손엔 어김없이 책이 들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코 시간적 여유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게 그것은 일상이 회복된다는 말이다. 일상의 시간은 언제나 여유롭지는 않다. 쫓기지 않는 순간, 그 시간은 일상이 된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 나 자신과 약속한 게 있다. 쫓기지 않는 것.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경우 반드시 내려놓을 것. 이는 일상을 일상으로 살아내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읽고 쓰다 보니 어느새 맞이한 인생의 후반전. 책과 글은 나의 일상과 늘 함께 한다.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쫓기지 않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 물리적 시간이 모자라다고 해서 쫓기는 것도 아니다. 내 삶을 포함해서, 우리 주위엔 일상 자체..
일단 써 보기 한 단락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의 경우, 이렇게 저렇게 쓰다 보면 ‘아, 이 정도면 되겠다’ 하는 순간이 어렵지 않게 찾아온다. 그렇다면 긴 글의 경우는 어떨까? 특히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가진 글을 쓰려고 한다면? 이 질문에 나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고 대답한다. 다른 이유는 긴 글이 갖는 체계성 때문이다. 한 문장이 아닌 두 문장 이상으로 늘어날 땐 맥락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한 단락이 아닌 두 단락 이상의 글을 쓸 땐 문장 간의 맥락만이 아닌 단락 간의 맥락도 신경써야만 한다. 여러 단락들이 모여 하나의 장을 이루고, 그 장들이 모여 하나의 부를 이룰 때에도 마찬가지다. 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인 맥락이 중요해진다. 한 문장을 쓸 땐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 반면,..
강제성과 창의력: 매임에서 매이지 않기 과학을 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같은 힘이 요구된다. 이 힘이 없으면 과학과 문학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과학으로 밥벌이로 하는 내가 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도 단지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프로 과학자이자 아마추어 문학도다. 작가라는 정체성까지 더하면 나는 초보 작가이기도 하다. 문학도로서 나는 문학작품을 읽는다. 작가로서 나는 글을 쓴다. 이 두 가지 경우 외부로부터 강제성은 없다.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엔 지장이 없다. 과학자로서 나는 과학을 한다. 과학을 한다는 건 관찰하고 묻고 따지고 생각하고 실험하고 분석하는 일을 반복한다는 말이다. 과학의 경우 강제성이 있다. 하지 않으면 밥줄이 끊긴다. 그러므로 하기 싫은 날도 해야만 한다...
작가라는 정체성: 꾸준히 쓰기를 넘어 작가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시상이랄까 영감이랄까 하는, 예측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어떤 순간에 의지하여 글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하진 못할 것이다. 지속하지 못하면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구름 같은 순간에 목을 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예기치 못한 순간은 작가에게 큰 동기를 부여하고 전환과 창조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작가이기 때문에 알아챌 수 있고 붙잡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컨대 시상이나 영감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꾸준히 글을 써나가는 사람을 나는 작가라고 정의한다. 한편 책을 낸 사람은 저자라고 부른다. 저자는 작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책을 읽는다는 것 책 읽는 사람이 좋다. 인사로 요즘 잘 지내시죠?, 하며 카피앤패이스트하듯 영혼 없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나, 요즘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혹은 요즘 피곤하신가 봐요, 하며 외모에 대한 평가로 대화의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요즘 무슨 책을 읽어요?, 하고 스스럼없이 묻는 사람이 좋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오히려 더 친근함과 진정성을 느낀다. 책이 아닌 진심으로 나를 묻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책을 꾸준히 읽어 나간다는 건 자기 관리가 된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자기 관리란 곧 시간 관리이며, 시간 관리란 가치 있는 것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행하는 실천에 다름 아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독서를 하는 사람은 없다. 보통 시간이 남아돌면 책을 손에 들지 않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모자랄 ..
다양한 읽기의 필요 신형철의 ‘인생이 역사’를 읽다가 훅 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어제 대전으로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읽은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에서도 다른 단어 다른 문체 그러나 같은 의미의 문장을 읽었다. 심지어 그 문장은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 나오는 것이라 했다. 책을 읽을 필요는 분명하다. 자기만의 협소한 세계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다. 자기가 왕이었던 좁은 우물이 파괴되기 위해서다. 자기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주었던 알이 깨지기 위해서다. 공부로서의 책. 그러므로 과장하자면, 깨지지 않는 독서는 감히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양한 책을 읽을 필요 역시 분명하다. 자기만의 목소리에 갇히지 않고 한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
말과 글 글을 잘 쓰기 위해선 글을 계속 써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문자로 표현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물론 머릿속에 떠도는 단어와 문장들도 어느 정도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건 마치 핵산의 주요 성분인 뉴클레오타이드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의 핵 안에 떠다니는 뉴클레오타이드들을 정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것들이 DNA 서열에 따라 mRNA를 가지런하게 만들어낼 때 비로소 그것들은 유전정보를 담게 된다. 뉴클레오타이드가 아닌 그것이 가지게 되는 서열이 곧 정보가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도는 여러 단어들과 단편적인 문장들은 뉴클레오타이드에 불과하다. 글이 완성되기 위해선 서열이 필요하다. 그 서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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