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글 글쓰기를 이제 막 배우며 시작하시는 여러 분들의 글 중 빈번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거들먹거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문 위주로 쓰려고 애쓰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한 단문이 그저 성의 없게 보인다거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지혜자인 듯 착각한 나머지 아포리즘을 구사하는 식으로 보인다면, 나는 차라리 단문을 사용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오히려 구구절절, 비록 장문이 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식으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단문의 미학은 장문을 쓸 줄 아는 다음 단계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길게 쓸 줄 모르면..

거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코엑스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다. 이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책장들이 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나는 오늘 방문 전까진 서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안내 데스크에 보란 듯이 쓰여 있었다. 여긴 서점이 아닌 도서관이라고, 책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압도되는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들은 실제 책이 아니라는 것. 책 표지를 인쇄하여 빈 박스를 감싼 듯한 물건 같았다. 책처럼 보이지만 책이 아닌 것들. 아니나 다를까. 진열된 많은 책들 중 책 앞면이 중복되는 것들도 많았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진열이었던 것이다. 속은 기분이었다...
천천히 달궈지는 책 책 종류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여기선 빨리 흥미를 유발하여 몰입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천천히 달궈지지만 정말 훌륭한 책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책,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눠보겠다. 빨리 재미를 느껴 책장이 국수 말아먹듯 넘어가는 책 중, 적어도 천 권 넘게 여러 장르를 골고루 읽은 나 같은 경우는, 오래 남는 책이 없었다. 내가 무인도에 들고 갈 책 몇 권, 아니 몇십 권을 꼽으라고 해도 나는 그런 책은 고를 마음이 추호도 없다. 반면,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책들은 한결같이, 소위 첫 눈에 어렵게 보이는 책들이었다. 재미로 읽는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책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악령’, 헤세의 ‘유리알 유희’, 카잔차키스의 ..
책 읽는 시간 이틀 전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19세기 영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황량한 지역 위에 우뚝 서 있는 집 워더링 하이츠에도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어디나 그렇듯 그곳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당분간 나는 그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즐기다 오게 될 것이다. 책 (문학작품, 특히 소설 위주) 읽는 시간이 주는 혜택은 여행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담긴 내용이 역사성을 띠는지 안 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신화나 전설일지라도 상관없다. 이 여행의 동력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상이 거세된 채 냉철한 이성만을 요구하는 책들도 유익이 있다. 지식의 확장과 ..
글 쓰는 시간 누군가는 붓을 들면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깊이 공감이 된다. 나 역시 글을 쓰려고 앉으면 고요를 느낀다. 마치 두터운 헤드폰을 쓰고 내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한 발치 멀어지고 나는 그렇게 활자의 세계로 도피를 감행한다. 이 도피처를 모를 적에 나는 대체 어디로 내 생각과 마음을 숨겼던 걸까, 하는 생각이 오늘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머리를 스쳤다.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글 쓰기 이전의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먼 고대의 일로 느껴졌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뭐라고, 내 삶을 리부팅시켰단 말인가.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는 침묵한다. 편안한 침묵이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고요가 백지의 여백 안에 충만하다. 부재의 충만..
잔상 장편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에 큰 잔상이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 며칠간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많다. 기발한 착상과 충격적인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게 담긴 단편소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잔상의 밀도는 단편이 높다. 잔상의 수명은 장편이 길다. 잔상의 투과력이랄까 파괴력이랄까 하는, 독자의 내면을 흠뻑 적시는 힘은 장편의 고유한 매력이다. 분량은 시간을 흡수하고, 흡수된 시간은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다른 걸 할 수 있는 선택권을 포기하고 수십 시간 책과 함께 한 나날들이 응집된 결정체가 바로 ‘벽돌책 깨기’의 묘미인 것이다. 어제 남긴 ’언어의 무게‘ 감상문은 제목에 충실하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사실 이 책은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언어의 무게로도, 글을 쓰고 번역하..
절박함: 쓰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팔 할이 절박함이다. 절박함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예민해서일지도 모른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소중함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랄까.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며 전반전이 남긴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슬픔과 허무함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후반전은 전반전의 연장전으로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전반전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던 삶이었다. 자신감도 성취감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포한 단조로움에서 내가 느낀 건 경박하게 보일 만큼의 가벼움이었다. 내 인생을 그렇게 되도록 놔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풍성한 가지가 있..
독서의 길 가볍고 쉬운 글에서 반짝이는 재치와 뜻밖의 깊이를 맛보는 즐거움도 쏠쏠하지만 그런 글에 만족해버리고 마는 건 독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겁고 어려운 글만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글을 읽어내려고 애쓰지 않는 독자에겐 분명 한계가 온다고 믿는다. 매너리즘이랄까, 슬럼프랄까 하는, 독서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심하면 읽어야 할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시기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늘 책을 가까이 두면서 나는 그런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선 독서에 균형이 필요하다. 누차 언급했던 독서의 3단계 중 1단계 (흥미 위주, 쉽고 가벼운 책들)와 2단계 (지식과 깨달음의 확장, 상대적으로 어렵고 무거운 책들)에 해..
밤 밤은 나를 절박하게 만든다.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읽고 조금이라도 더 쓰려고 애쓰게 된다. 어젠 피곤했는지 밤 아홉 시경에 누웠다. 잠시만 누워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 여덟 시까지 누워 있었다. 요즘엔 네다섯 시간을 연달아 잘 수 있다. 어젠 합치면 적어도 9시간은 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들과 아내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홀로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어색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웠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일 만큼 말이다. 충분한 잠이 주는 유익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자볼까 한다. 실천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절박함이, 성실한 지속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무너뜨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무게 나에겐 밤에 읽는 책이 있고, 시간에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언어의 무게'는 전자에 해당된다. 어제 읽은 부분에서 작품 속 화자는 이런 사람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언어와 함께 보내리라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은 남자’ 언어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 삶에 침투하여 그 삶을 지배한 언어의 힘을 느꼈다. 언어의 폭력성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언어에 대한 사랑과 절박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마지막 날에 무엇과 함께 보내고 싶은가? 세상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같고 그것이 직업이 되면 좋을 것이다. 현실에선 괴리가 있고 자주 다르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
깊은 독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를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다. 장편일수록 앞부분은 일부러 천천히 읽는다. 뿌리를 견고히 내린다고나 할까, 아니면 베이스캠프를 친다고나 할까. 앞으로 수백 페이지라는 대양을 건너기 위해선 출발지점이 어딘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그래야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속도는 언젠간 나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서두르다 보면 모든 걸 놓치기 마련이며, 그 어떤 두꺼운 책도 읽어내지 못하게 될뿐더러, 아예 그런 책은 앞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벽돌책 깨기의 나름대로의 노하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말이다. 아내와 아들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두 시간 정도 집에 혼자 ..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우리를 깨우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독서 경력이 5년이 넘은 지인이 읽는 책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평균 한 달에 다섯 권 정도 읽는다고 했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기에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직접 가방을 열어 가장 최근에 구입한 책이라며 보여주었다. 자기 계발서와 연예인들이 쓴 에세이, 그리고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으면 한두 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대답 안에 도끼는 없었다. 이유식과 죽과 미음이 있을 뿐이었다. 실망스러운 마음..
일차적인 독서를 넘어서 정작 감성이 풍부한 독자는 감성팔이 책을 읽지 않는다. 감성이 풍부한 작가 역시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감성팔이 책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성팔이 책은 주로 누가 쓰고 누가 읽는가. 왜 여전히 이런 책이 잘 팔리는가. 한 가지 이유로 나는 대부분 독자들의 독서가 일차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며, 읽기 편하고,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 책들 위주로 진행되는 독서. 며칠 전 포스팅에서 이미 언급했듯 이러한 일차적인 독서는 아주 중요하다. 얕아도 재미, 흥미, 유익, 교훈 등을 쉽게 접하며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적했듯이 독서가 이런 단계에 머물게 되면 독서는 하나의 우물이 되고 독자는 그 안에 갇힌 채 독서를 지속..
독서의 쓸모 가볍고 쉬운 책에 길들여질 땐 일부러 두껍고 어려운 책을 고른다. 한 페이지, 아니 한 단락, 아니 한 문장을 이해하기에도 집중을 요구하는 책을 손에 든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서 천천히 읽어나간다. 독서의 또 다른 묘미다. 독서의 일차적인 용도는 여가생활로써 우선 재미를 동반해야 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차적‘이다. 독서는 반드시 공부로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공부라 함은 교과서 같은 책으로 진행하는 학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성장시키며 초월시키는 모든 행위를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나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모든 인간은 자기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길이..
독서 독서량이 뚝 떨어졌다. 일주일에 한두 권씩 읽어나가는 게 보통인데, 지난 보름간 단 한 권밖에 읽지 못했다. 그것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사실 독서에 할애한 시간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이 책 저 책을 집적거렸다. 심지어 그중 두 권은 모두 백 페이지 가량 읽기도 했다. 하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아니,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해야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끝내 덮어버린 후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읽자 다짐하고 책장에 도로 꽂아 넣었다.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내 모습이 희미해진 것 같다. 가을을 맞이하려고 한 발짝 늦게 준비했다가 결국 맞이한 게 겨울이라 그런 걸까. 갑자기 추워지며 연말연시의 분위기가 되어버려 그런 걸까.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내 마음도 ..
기억의 스냅샷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두는 일. 내가 글쓰기라 부르는 일이다. 나는 이 행위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요구한 적 없었다. 이런 것을 자처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다만, 운명이랄까, 사명이랄까 하는 무언의 책무를 느낀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단순히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글쓰기의 팔 할이 절박함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기록하고 남기는 행위로부터 나는 신성한 그 무엇을 감지하는 듯하다. 마치 사진사가 추억의 한 장면을 스냅샷으로 남기듯, 나는 기억의 순간들을, 그 찰나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 특정한 목적이 있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낄 뿐이다. 그 부름에 순응할 뿐이다. ..

세 번째 저서: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출판사 대표님과 잠깐 통화했다. 책이 저자와 편집자 손을 떠나 인쇄소로 넘어갈 때의 그 복잡 미묘한 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빨리 출간되길 바라다가도 막상 인쇄가 된다고 하면 이를 어쩌나 싶어 발을 동동 굴리게 되는 이 알 수 없는 마음. 어쨌거나 마감된 원고는 인쇄소로 넘어갔다. 이제 책의 운명은 저자와 출판사의 손을 떠났다. 어쩌다 보니 벌써 세 번째 저서다. 평생 책 한 권 써볼 수 있을까 하면서 미국에서 혼자 묵묵히 읽기와 쓰기에 침잠하던 내게 어느 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이 선율 출판사 이재원 대표님이다. 2019년 12월,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간을 내어 직접 차를 끌고 대전으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만나러 오셨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책에 ..
말과 글 들려진 말과 쓰인 글을 통해 알려진 모습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순간, 말과 글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됩니다. 말과 글은 나를 문자로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아닌 것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과 글에 능한 자’라는 이 축복된 말이 ‘거짓과 위선에 능한 자’로 여겨지곤 할 때마다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말과 글로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거짓증폭시키는 자들은 백이면 백 자기중심적입니다. 타자를 배려하는 척할 뿐, 실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타자에게 각인시키려는 행위를 지속할 뿐입니다. 자기 객관화는 말과 글의 보이지 않는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명함과 진정성이 배제된 말과 글은 악할 뿐입니다. 타자와 자신마저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발생, 성숙, 노화 - 박대영 목사님의 추천사 마지막 추천사가 오늘 도착했다. 과학 전공 지식 없이 신학과 목회만 하신 분의 추천사도 꼭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목회자들에게도 이번 책은 교양지식이나 설교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현실을 목사님들은 의미 있게 여기시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영광스럽게도 박대영 목사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다. 바쁘신 일과 속에서도 꼼꼼히 읽어주셔서, 그리고 정말 멋진 추천사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문과 남자가 난생 처음 과학책을 완독하게 했으니 참 장한 책입니다. 나는 본서에 라는 부제를 달고 싶습니다. 나를 담은 몸을 모르고서 여태 살았으니 제대로 살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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