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는 기분적어도 인생 후반전은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남을 향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내 인생의 전반전은 오로지 나의 확장과 증폭으로 점철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내 이기적 의지라기보다는 시대와 문화 탓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해 보지만, 이 부끄러운 마음은 깊이 박힌 못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었고 나의 정체성의 중추로까지 자리 잡았다. 나는 탁월함과 명석함, 그리고 신속, 정확한 기술을 숭배했고 거기에 충실한 신자였다. 내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은 하등 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암묵적인 우월감에 취해 있었고 그게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자의 숙명이라 믿고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흔적들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삶에서의 회심의 순간이라 할 수 있..

'닮은 듯 다른 우리' 다시 읽기"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책 '닮은 듯 다른 우리'가 출간되어 기쁘고 반갑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유전학의 코드로 읽는 동시에 대문호의 인문학적 깊이로 생물학의 본질을 천착하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책이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술술 읽히지만 인간다움의 심연을 응시하는 저자의 혜안이 예사롭지 않다. 문학과 생물학의 융합이라는 개척지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새삼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다른 이도 아니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님이 친히 추천사 (사진의 빈칸을 장식한)를 써 주신 나의 두 번째 저서를 오늘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훑어봤다. 이 책 역시 선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
써야만 써지는 글독자를 붙들 수 있는 강력한 자석과도 같은 문장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갖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건 어렵다. 여전히 나는 영감의 힘을 포기하지 못하는 축에 속하지만, 성실함만으로 그런 문장을 써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영감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하는 방법은 하나다. 물론 그런 문장을 항상 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장들을 곧잘 써낼 수는 있다. 이를테면 뻔한 주제이지만 뻔하지 않게 써낼 수 있는 시각, 개별성 가운데 보편성을 찾아낼 수 있는 통찰, 적절한 대조를 찾아내어 글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환기, 등을 담아내는 문장들을 써낼 수는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한 가지 이유책을 읽는 한 가지 이유는 어떤 문장에 붙들리기 위해서다. 희열이랄까, 전율이랄까 하는 이 쾌감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문장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고, 가끔 가슴 저 밑바닥까지 침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잊히고 마는데, 어느 날 문득 데자뷰와 같은 순간을 맞이하면서 오래전에 침전된 그 문장이 떠올라 다시 마음 깊은 울림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주로 또 다른 책을 읽을 때에 찾아온다. 이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런 가슴 설레는 반복 속에 내 삶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잠시 세상의 모든 행복을 맛본 자가 된다.
미국 두 번, 중국 한 번을 3주 만에 다녀오니 한국은 어느덧 장마다. 어제는 비행기 안에서 쓴 추천사와 복상 청탁 원고를 정리해서 보냈다. 생각해 보면 1박 3일간의 이번 미국 여행은 꿈만 같다. 실제로 내가 다녀왔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여전히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일상이 갖는 치유의 힘을 기대한다. 내일은 7월. 아,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벌써 2024년 절반이 간다. 남는 건 글밖에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글은 기억이 되고 나의 역사가 된다. 계속 글을 써야 할 한 가지 이유다.
예의땡볕을 걷다가 풍성한 가지가 드리운 그늘 아래로 들어서면 동공이 확장되면서 비로소 눈이 열린다. 저 멀리서 어둡게만 보였던 숲 속 세상이 보란 듯이 내 앞에 펼쳐진다. 어떤 표현이 가장 적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층층의 많은 가지들 덕분에 옅어진 햇살은 싱그럽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정확한 단어는 정확한 경험에서 우러난다. 책을 많이 읽어도 직접 겪어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텍스트 읽기에 멈추지 말고 자연을 읽고 사람을 읽고 세상을 읽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텍스트에 힘을 부여하는 방법이고, 부여된 텍스트를 마침내 온전히 읽어내는 방법이며, 텍스트를 완성하는 방법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힘은 책상에서 쓰인 텍스트가 아닌 책상 밖에서 완성된 텍스트인 것이..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사람을 읽고 나를 읽고 삶을 나눈다 이틀 전 목요일 저녁,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아홉 번째 만남이 있었다. 6시부터 8시까지가 공식적이라 할 수 있는 계획된 모임 시간인데, 보통 9시 10시까지 나눔이 지속된다. 중간에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한 달 만에 회포도 풀고 도스토옙스키 덕분에 터져 나온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대부분 비슷한 고백을 하신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여기서 하는 거죠? 나 이런 얘기 밖에서 잘 안 하는데...“ 그러나 우린 이제 안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건 사람을 읽는 것이고, 또 나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외면을 비추는 건 거울이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면에서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책을 읽고 궁극적으로 ..
이야기의 힘, 문학의 힘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책을 집어든다.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책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은 답이 아닌 답을 이끄는 실마리, 혹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것도 무한으로. 어쩌다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책 자체라기보다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위치한 나의 생각과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책을 매일 읽어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순간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전율하게 되고 살아 있어서, 혹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 깊이 감동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책을 드는 이유도 그런 기대 때문일 것이다.독..
잘 쓰기 위해 분별해서 읽기 읽기와 쓰기에 대해 그동안 쓴 글만 해도 수십 편이 되겠지만, 수백 편이라도 모자랄 주제이기에 오늘 하나 더 보탠다. 먼저 질문 한 가지.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나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답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 >>> 쓰는 행위는 출력에 해당된다. 출력은 입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궁극적인 입력은 읽기다. 또한, 쓰는 행위는 움직임이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읽기가 곧 음식이다. 다시 말해, 쓰기라는 행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읽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이젠 말 같은 말을 해볼 차례다. 읽는다면 ..

공간, 사람, 기억, 그리고 문학과 소설 공간은 그리움을 매개한다. 그리움은 그 공간을 볼 때마다 그곳을 충만하게 채웠던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흔적이라고도 불리는 공간에 대한 사적인 기억. 사람은 사라져도 공간은 남는다. 그리움이 그렇듯이 공간은 시간을 초월한다.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지만, 유독 그리운 사람이 연관될 때마다 분리가 일어난다. 아마도 그리움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공간은 휘고 낮게 가라앉는다. 이에 맞춰 시간은 느리게 가기 시작하고 어느 점에서 멈추어 선다. 우리가 향수의 끝이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반복된 향수가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끝이 나는 이유다. 재현되지 않는, 아니 재현될 수 없는, 아니 재현되지 않아야 할 향수가 우리에게 언제나 아련함으로 다가오..
휴식 내가 써온 300편이 넘는 독서감상문 중 가장 긴 시간을 투자했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다. 두 번째는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었고, 그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들였던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등이었다. 작품의 분량 및 난이도와 감상문에 들어간 시간이 얼추 비례했다. 어젯밤 완성한 감상문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된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열 시간은 족히 사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악령'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감상문일 것이다.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비판적인 글을 쓸 때에는 특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불필요한 감정을 건드리..
성실한 글 글쓰기를 이제 막 배우며 시작하시는 여러 분들의 글 중 빈번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거들먹거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문 위주로 쓰려고 애쓰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한 단문이 그저 성의 없게 보인다거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지혜자인 듯 착각한 나머지 아포리즘을 구사하는 식으로 보인다면, 나는 차라리 단문을 사용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오히려 구구절절, 비록 장문이 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식으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단문의 미학은 장문을 쓸 줄 아는 다음 단계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길게 쓸 줄 모르면..

거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코엑스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다. 이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책장들이 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나는 오늘 방문 전까진 서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안내 데스크에 보란 듯이 쓰여 있었다. 여긴 서점이 아닌 도서관이라고, 책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압도되는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들은 실제 책이 아니라는 것. 책 표지를 인쇄하여 빈 박스를 감싼 듯한 물건 같았다. 책처럼 보이지만 책이 아닌 것들. 아니나 다를까. 진열된 많은 책들 중 책 앞면이 중복되는 것들도 많았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진열이었던 것이다. 속은 기분이었다...
천천히 달궈지는 책 책 종류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여기선 빨리 흥미를 유발하여 몰입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천천히 달궈지지만 정말 훌륭한 책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책,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눠보겠다. 빨리 재미를 느껴 책장이 국수 말아먹듯 넘어가는 책 중, 적어도 천 권 넘게 여러 장르를 골고루 읽은 나 같은 경우는, 오래 남는 책이 없었다. 내가 무인도에 들고 갈 책 몇 권, 아니 몇십 권을 꼽으라고 해도 나는 그런 책은 고를 마음이 추호도 없다. 반면, 인생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책들은 한결같이, 소위 첫 눈에 어렵게 보이는 책들이었다. 재미로 읽는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책들, 이를테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악령’, 헤세의 ‘유리알 유희’, 카잔차키스의 ..
책 읽는 시간 이틀 전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19세기 영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황량한 지역 위에 우뚝 서 있는 집 워더링 하이츠에도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어디나 그렇듯 그곳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당분간 나는 그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즐기다 오게 될 것이다. 책 (문학작품, 특히 소설 위주) 읽는 시간이 주는 혜택은 여행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담긴 내용이 역사성을 띠는지 안 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신화나 전설일지라도 상관없다. 이 여행의 동력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상이 거세된 채 냉철한 이성만을 요구하는 책들도 유익이 있다. 지식의 확장과 ..
글 쓰는 시간 누군가는 붓을 들면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깊이 공감이 된다. 나 역시 글을 쓰려고 앉으면 고요를 느낀다. 마치 두터운 헤드폰을 쓰고 내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한 발치 멀어지고 나는 그렇게 활자의 세계로 도피를 감행한다. 이 도피처를 모를 적에 나는 대체 어디로 내 생각과 마음을 숨겼던 걸까, 하는 생각이 오늘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머리를 스쳤다.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글 쓰기 이전의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먼 고대의 일로 느껴졌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뭐라고, 내 삶을 리부팅시켰단 말인가.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는 침묵한다. 편안한 침묵이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고요가 백지의 여백 안에 충만하다. 부재의 충만..
잔상 장편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에 큰 잔상이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 며칠간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많다. 기발한 착상과 충격적인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게 담긴 단편소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잔상의 밀도는 단편이 높다. 잔상의 수명은 장편이 길다. 잔상의 투과력이랄까 파괴력이랄까 하는, 독자의 내면을 흠뻑 적시는 힘은 장편의 고유한 매력이다. 분량은 시간을 흡수하고, 흡수된 시간은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다른 걸 할 수 있는 선택권을 포기하고 수십 시간 책과 함께 한 나날들이 응집된 결정체가 바로 ‘벽돌책 깨기’의 묘미인 것이다. 어제 남긴 ’언어의 무게‘ 감상문은 제목에 충실하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사실 이 책은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언어의 무게로도, 글을 쓰고 번역하..
절박함: 쓰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팔 할이 절박함이다. 절박함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예민해서일지도 모른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소중함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랄까.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며 전반전이 남긴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슬픔과 허무함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후반전은 전반전의 연장전으로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전반전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던 삶이었다. 자신감도 성취감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포한 단조로움에서 내가 느낀 건 경박하게 보일 만큼의 가벼움이었다. 내 인생을 그렇게 되도록 놔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풍성한 가지가 있..
독서의 길 가볍고 쉬운 글에서 반짝이는 재치와 뜻밖의 깊이를 맛보는 즐거움도 쏠쏠하지만 그런 글에 만족해버리고 마는 건 독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겁고 어려운 글만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글을 읽어내려고 애쓰지 않는 독자에겐 분명 한계가 온다고 믿는다. 매너리즘이랄까, 슬럼프랄까 하는, 독서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심하면 읽어야 할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시기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늘 책을 가까이 두면서 나는 그런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선 독서에 균형이 필요하다. 누차 언급했던 독서의 3단계 중 1단계 (흥미 위주, 쉽고 가벼운 책들)와 2단계 (지식과 깨달음의 확장, 상대적으로 어렵고 무거운 책들)에 해..
밤 밤은 나를 절박하게 만든다.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읽고 조금이라도 더 쓰려고 애쓰게 된다. 어젠 피곤했는지 밤 아홉 시경에 누웠다. 잠시만 누워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 여덟 시까지 누워 있었다. 요즘엔 네다섯 시간을 연달아 잘 수 있다. 어젠 합치면 적어도 9시간은 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들과 아내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홀로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어색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웠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일 만큼 말이다. 충분한 잠이 주는 유익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자볼까 한다. 실천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절박함이, 성실한 지속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무너뜨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