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런 일이 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포기한 것이 영원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어야 하며 그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사실 안정된 평안은 포기의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경험하는 은혜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하나님께서는 왜 무언가를 주시기 전에 먼저 포기하기를 원하시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이 그 대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더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말없이 그리고 조용히 기다려라. 정신을 차리고 민감하게 깨어 기다려라. 신뢰가 믿음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배워라. 믿음이란 자동차에 기어를 넣는 것과 흡사하다. 믿음은 즉시 가동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즉시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영적인 생활을 가동시킬 수 없을 때는 기어를 후진으로 하지 말고 중립으로 하라. 신뢰란 당신이 영적인 생활을 중립에 두는 방법이다. 신뢰는 곧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것으로써 "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또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 어딘가에 계신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0-13절] 첫번째 질문.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능력 주심을 믿는가?" 두번째 질문.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능력을 사모하는가, 아니면 그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가?" 첫번째 질문에서 YES라고 소신있게 대답한 사람이라도 두번째 질문에서는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첫번째 대답이 올바른 믿음에 기반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보단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장 2-8절] 여기서 마지막 문장인 8절을 영어로 보면 이렇게 씌여져 있다. "he is a double-minded man, unstable in al..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는 낙심할 일이 있기 때문이고,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역시 후회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러가지 모양새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진들의 충고와 조언들은 인간이 가진 죄성에 입각한 본능적인 악한 행동들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꾸로 보면 대부분의 교훈들은 선경험자에 의해 시행착오를 거쳐온 산 지식인 셈이다. 실패를 교훈 삼아 미리 미래를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후대들을 위한 선대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십계명을 생각해 보면 거리가 느껴진다. 십계명은 당대의 지식인이나 덕망 있는 자들에 의해 씌여진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인간들이 질서를 지키며 함께 살기 위해 만든 법이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넘어선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
살아가면서 또 한번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적어도 출발만은 바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기호와 인맥, 지연, 학연 등의 (별로 있지도 않지만) 배경들을 다 내려놓고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했다. 나와 내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미래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달라고 하나님께 의뢰하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가 나오면 100% 순종하기로 다짐하며.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선 우리 가정의 앞길을 당연히 예비해 놓으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조용히 기다렸지만 절대 가만히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하나님은 확실히 열릴 문을 약속하시면서도 우리에게 그 문을 직접 두드리는 행동을 하길 원하신다. 생각에 매인 믿음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지는 믿음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People say "You are what you do." However, God says "Do what you are." I really want to find what I am. I believe God made me for a good purpose. Like Paul, who made tents for a living, God has already given me a vocation as a important method to preach the Gospel. What is my 'tentmaking'?
쫓겨다니는 자들은 보통 너무 바빠서 부부, 가족, 친구와의 일상적인 관계 그리고 그들 자신과의 관계마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만족할 만큼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1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더 많은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바쁜 사람이라는 평판이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자 중요 인사임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빈틈 없이 짜인 스케줄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 한다. 그들은 심한 자기 연민을 표출하기도 한다. 자신의 너무 많은 책임에 '매여' 있으며 조금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빠져나갈 출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그들에게 일어날 수..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 내면세계가 무질서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것. 내면세계의 질서의 유무.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학위, 경력, 대인관계, 건강, 미모와 같이 눈에 보이는 외면 세계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다 써버린다. 목적은 오직 하나. 빠른 출세와 성공. 그러나 외면세계를 지속할 수 있게 받쳐주고 있었던 내면세계에 공백이 생겨버리게 되면, 유능하지만 결국 지쳐 쓰러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면세계는 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 하나이다. (난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안에 전쟁터가 있..
결국 상처는 내 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죄는 다름 아닌 자기애를 먹고 산다. 죄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영원한 죽음으로 이끈다. 죄는 우리의 자아와 합일되어 있다. 따라서 죄만 없애고 자신은 살릴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상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해도 좌절하고 마는 이유는 나는 살고 문제만 제거하려는 인본적인 노력, 그 노력이 종국적으로 실패이기 때문이다. -더 내려놓음 (이용규)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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