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대로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초록의 그라데이션을 풍성하게 만들어내며 내 살갗을 때리는 햇살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자가용 안에서 맞이한 반가운 햇살이었다. 며칠 연이어 흐린 날씨에 기운이 없었는데 빛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았다. 차가울만큼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싶어하는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공급해 준거다. 복잡하고 부정적이었던 모습이 심플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하지만 가짜는 진짜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았다 하더라도 진짜라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더 맞겠다. 왜냐하면 가짜는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진짜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진짜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는 스스로 진짜라고 믿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가짜들이다. 슬프게도 세상엔 이런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진짜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들이 가로채 버린 것이다. 난 진짜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가짜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날을 꿈꾼다.
Cleveland 공항에서 Detroit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Detroit에서 Incheon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야 말았다. 덕분에 Narita를 한번 더 경유해서 귀국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한국 도착 시간도 밤 10시란다. 원래는 오후 3시 경인데 말이다. 그래도 별로 불평과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날 위해 준비해 두신 것일 테니까. 아내가 마중 나온단다. 시험 준비하느라 힘들텐데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와 공항까지 온단다. 거절을 했었지만 그래도 좋다. 아내가 보고 싶다. 역시 사랑스러운 아내다. 내 가족이다. 나와 한몸을 이룬 여자다. 내가 돕고 함께 가야할 평생의 동반자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많은 감사 제목을 저에게 주셨..
2011년 4월 12일 화요일, Cleveland 날씨가 흐리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Lisa가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공항을 조용히 빠져 나온다. 20분 남짓 시속 80km 정도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Cleveland Clinic. 참 작고 시골 같은 풍경이다. 친절한 운전기사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Cleveland Clinic은 거대한 영역에 걸쳐 산재되어 있단다. 내려서 보니 정말 보이는 모든 건물이 Cleveland Clinic 소속이다. Harvard Medical School 주위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뭇 다른 느낌. 조금은 더 안정되어 있고 조금은 더 조용한 것 같다. Harvard에서 느꼈던 학구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지만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는..
2011년 4월 11일, Boston 9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20분 일찍 Dr. Rossi의 오피스 문을 두드렸다. 뭔가에 열중해 있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반갑다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남자 기숙사 방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머리는 곱슬이기도 하지만 이틀 정도는 감지 않았거나, 아니면 방 환기조차 잘 시키지 않으면서 밤늦게까지 오피스에 처박혀서 연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이다. 영어가 귀에 쏙쏙 들린다. Dr. Karsenty의 프랑스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에 제대로 당해봐서 그런지 미국식 영어발음은 이제 속도만 따라 잡는다면 웬만한 건 다 들리겠다 싶다. Dr. Rossi는 웅변가다. 설득가다. 그리고 science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함을 가진 열정적인 과학자다. 20분 ..
2011년 4월 10일, Boston Columbia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안전함이 느껴지고, 대도시이지만 downtown이라는 느낌보다는 대규모 종합대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여기는 바로 Harvard Medical School이다. 본성이가 공항까지 픽업해 주러 오는 덕분에 Dr. Rossi가 미리 예약해 준 호텔까지 편하게 왔다. 고마운 본성이와 함께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어떻게 뉴욕과 보스턴은 분위기가 이렇게도 다른 걸까? 어둡고 삭막하고 위험하면서도 화려한 곳이 뉴욕 맨하탄이라면 보스턴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타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따라서 피부에 느껴지는 분위기가 공부하는 나로선 보스턴이 훨씬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Dr. Karse..
2011년 4월 9일, New York 어제 인터뷰를 끝내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곧장 왔었다. 여긴 월 스트리트와 9.11 테러로 무너졌던 쌍둥이 빌딩이 바로 근처에 있는 lower Manhattan이다. New York, Boston, 그리고 Cleveland, 이렇게 세 군데나 인터뷰를 가야 하고 Orland에서 학회가 수요일 날 끝이 났기 때문에 주말이 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뉴욕에 왔으니 반나절만이라도 sightseeing을 하기로 한다. 가볍게 차려 입고 카메라가 든 가방을 메고 숙소를 나선다. 어제완 달리 날씨가 화창하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먹고 일어나 곧장 월 스트리트를 걸어 보기로 한다.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냥 높은 빌딩들이 ..
2011년 4월 8일, New York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일찍 숙소를 나선다. 오전 9시에 Dr. Karsenty의 오피스로 가야 한다. 드디어 첫 인터뷰가 시작되는 거다. 생각보단 꽤 젊어 보인다. YouTube에서 보던 모습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나 대가의 풍이 느껴진다. 뭔가 다르다. 역시 최전방에서 선전하고 있는 랩의 PI답다. 프랑스 억양과 발음이 영어에 너무 많이 녹아 있어 말을 절반 정도 알아 듣는 것 조차 힘이 든다. 그래도 여러 논문의 abstract들을 읽어 놓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100% 무슨 내용인지 못 알아 들을 뻔 한 셈이다. 30분 넘게 랩에서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일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비밀로 지켜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거 보면 정말 여긴..
2011년 4월 7일, New York JFK 공항. 뉴욕이다. Baggage claim에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말로만 듣던 뉴욕의 노란 택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냥 택시를 탈까 하다가 다시 들어와 안내원 할머니에게 길을 묻는다.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가격까지 덧붙여 묻는다. 외국인인 나에게 친절하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면서 뉴욕 지하철 노선도까지 챙겨 주신다. 지하철은 상당히 낡고 지저분하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에서 보던 것과는 천지 차이다. 지나다니는 거대한 체구의 흑인들도 첨 보는 나에겐 꽤나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을 보니 무언가 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억압당하고 억눌린 역사의 흔적이 그들의 눈에서 또 행동거지에서 묻어나는 듯하다. 1..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란 책을 사 읽고 있다. 일부러 천/천/히. 네이버에서 간간히 업데이트되는 '지구촌 산책'이란 곳에서 보았던 김남희씨의 자유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내 마음도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을 곱씹게 된다. 자유함과 고독함의 묘한 만남. 바로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아닐까. 여행사를 통해 오로지 기념 촬영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바삐 움직이는 그런 여행 말고, 처음 가는 곳이라도 그곳에 흐르는 문화와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며,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에 귀를 귀울이게 되는 그런 여행 말이다. 여행을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성숙해져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여행 말이다. 난 오늘도 비록 몸은 움직이기가 힘드나 마음만..
쫓겨다니는 자들은 보통 너무 바빠서 부부, 가족, 친구와의 일상적인 관계 그리고 그들 자신과의 관계마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만족할 만큼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1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더 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더 많은 일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바쁜 사람이라는 평판이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자 중요 인사임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빈틈 없이 짜인 스케줄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 한다. 그들은 심한 자기 연민을 표출하기도 한다. 자신의 너무 많은 책임에 '매여' 있으며 조금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신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빠져나갈 출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그들에게 일어날 수..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 내면세계가 무질서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것. 내면세계의 질서의 유무.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학위, 경력, 대인관계, 건강, 미모와 같이 눈에 보이는 외면 세계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다 써버린다. 목적은 오직 하나. 빠른 출세와 성공. 그러나 외면세계를 지속할 수 있게 받쳐주고 있었던 내면세계에 공백이 생겨버리게 되면, 유능하지만 결국 지쳐 쓰러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면세계는 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 하나이다. (난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안에 전쟁터가 있..
인간미라는 게 뭘까?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인간미가 넘친다, 혹은 매정해 보인다고 판단해 버리는 걸까? 얼굴에서 풍기는, 그래서 그의 행동거지에서 풍기는 여유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물론 그저 순박해 보이는 사람조차도 인간미가 넘친다는 말을 들을 순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미는 바로 여유 그 자체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정한 여유는 시간적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심적 여유를 지칭해야 맞을테다. 즉, 바쁜 일상에 쫓긴다고 해서 심적 여유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는 게다.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맛볼 수 있는 심적 여유를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한 여유 있는 자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시간적 여유는 물론, 심적 여유까지도 당연히 누리..
내 얼굴엔 여유가 없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 그리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등을 모두 아우르는 한 단어. 여유. 그러므로 여유가 없다는 말은 포용력, 이해심, 그리고 배려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누구라도 날 좋아할 사람 없겠다 싶다. 물론 속에 있는 걸 얼마나 겉으로 드러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낼 순 있겠지만서도. 원래 조금 급한 성격에 맡은 일은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기 때문이라고 변변찮은 변명을 해보지만, 그게 결코 여유 없음을 설명해 주진 못하겠지. 그저 변명은 변명에 지나지 않으니. 하기야 나조차도 납득이 안되니깐. 그렇다면 왜? 만족하지 못함 때문일까..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즐길 줄 안다는 것,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병행하여 좋은 결과로 마무리짓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즐길 수도 없고 시간 활용을 잘 하여 얻은 좋은 결과에도 행복해 할 줄 모르겠지. 그저 질좋은 기계처럼 일을 해댈뿐. 한마디 한마디에 대꾸하고 또 반박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또 과학적이라는 칭찬을 듣기엔 손색이 없으나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잖아. 아무리 좋은 논리라 할지라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한다면 그 또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수준 낮은 사람, 수준 높은 사람에 관계없이 적을 만드는 논리라면 피해야 마땅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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