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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옷을 입은 도스토옙스키의 구전동화 같은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을 읽고

감상문 (특히 문학 작품에 대한)을 남길 때 나는 작품의 제목을 할 수 있는 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저자 (혹은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실패다. ‘결혼식’은 쉽게 이해가 되는데 작품을 다 읽어도 왜 크리스마스나 송년회가 아닌 ‘크리스마스 트리’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별 뜻 없이 도스토옙스키는 연말이라는 시기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했겠거니 하며 넘어가려 한다 (재독 하면 혹시 알게 될까? 내가 이 작품을 다시 읽긴 할까?).

내러티브에서는 도스토옙스키보다 푸시킨이 더 많이 느껴진다. 여태껏 읽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에 비해 평면적이다. 구전동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짧지만 웃지 못할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전형적인 도스토옙스키가 느껴지는 부분은 소설 초반 작중 화자의 캐릭터를 묘사할 때 (병적으로 외톨이인 듯한 캐릭터는 꽤나 익숙하다), 그리고 결혼식 신랑 율리안 마스따꼬비치의 5년 전 모습을 묘사할 때라고 할 수 있겠다. 나머지는 죄다 푸시킨인 것만 같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는 열여섯 살 소녀,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가진 재력을 미리 알고 5년 전 한 어린이 무도회에서 열한 살이었던 그녀를 미리 점찍어 두고 결국 자기 신부로 만들어버리는 교활한 기회주의자 율리안 마스따꼬비치. 이 둘의 5년 전과 후의 모습을 모두 알고 우연히 어떤 교회 옆을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보게 되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중 화자.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인 것만 같은 이 기괴한 기분.


열린책들 판으로 14 페이지 밖에 안 되기 때문이리라. 무언가 도스토옙스키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짧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꿋꿋하게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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