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인생과 신앙의 반려자이자 도우미 이정일 저,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를 읽고 이 책은 전작 (이정일 저,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과 맥을 같이 한다. 저자의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오랜 신앙적 경험을 토대로 문학이 인생과 신앙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차근차근 친절하게 들려준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특정한 아홉 편의 문학 작품을 선정하여 그것들을 중심으로 각 장을 구성한 것이다. 놀랍게도 선정된 아홉 작품은 모두 현대 문학에 속한다. 가장 오래된 작품이 원서로는 1995년 작이다. 현대 문학보다 고전 문학을 더 사랑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지만, 고전을 잘 읽지 않는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춘 저자의 배려가 느껴져 나의 실망은 쉽게..

읽기: 무용성의 유용성 서자선 저, ‘읽기:록’을 읽고 ‘읽기’는 크게 두 번에 걸쳐 우리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첫 번째는 언어와의 첫 만남에서다. 우리는 언어의 유입으로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읽을 줄 알게 된다는 건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나만으로 가득 찼던 상상의 세계에서 타자와 세상이 함께 존재하는 풍성한 세계로 진입한다. 그 세계는 언어의 세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언어의 법을 배우고 복종하고 또 내 것으로 삼게 된다. 두 번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과도 같은 인생의 전환점에서다. 이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을 만나게 되는 시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 이전에도 글을 읽긴 읽었으나 그건 읽은 게 아니었다는 고백을 하게 될 정도로 ..

읽기와 쓰기: 부재와 결핍 속에서 피어난 사랑 크리스티앙 보뱅 저, ‘작은 파티 드레스’를 읽고 우리는 모두 태어남과 죽음 사이를 살아간다. 유년기를 거치며 성년기로 나아간다. 자크 라캉은 ‘에크리’에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재해석하며 ‘언어의 유입으로 인한 주체의 탄생’을 말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환영일지도 모를 그 모습을 따라 상상으로 자아를 구성하는 단계 (상상계)에 머물던 아이는 어느 날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하면서 새로운 세계 (상징계)로 진입하며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상징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이자 언어로 이루어지고 언어를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모든 관계를 맺는 세계다. 인간은 언어에 노출되고 그것의 법에 복종하면서 비로소 주체가 되는 ..

시대적 정황이 문학의 상상력을 입을 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어’를 읽고 실화라고 운을 떼며 소설의 문을 여는 이 작품의 화자는 어느 날 이반 마뜨베이치 부부와 함께 악어를 구경하러 아케이드를 찾는다. 한 사람 당 25꼬뻬이까의 관람료까지 내며 들어간 전시장에서 그들을 맞이한 악어는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얕은 물 웅덩이 속에 덩그러니 드러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모두를 실망시켰다. 특히 악어 구경을 가장 먼저 제안했던 이반 마뜨뻬이치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로부터도 관심은커녕 혐오스럽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자연스레 일행은 그 옆에 전시된 원숭이 우리로 재빨리 이동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

재앙 속에 빛난 고결함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몽 같은 이야기’를 읽고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도 분량으로 따지자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호흡이 긴 장편을 선호하는 취향 덕에 그의 작품 중 장편을 먼저 다 읽고 이젠 중단편을 아쉬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하나씩 까먹고 있다. 쉬이 없어질까 두려워 맛난 간식을 아껴먹으려는 아이처럼 나는 책장에 꽂힌, 의도적으로 아직 읽지 않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들을 일주일에도 여러 번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이전엔 몰랐다. 독서도 즐겁지만 아끼는 것도 즐겁다는 것을. 대부분의 도스토예프스키 중단편들은 책 한 권에 여러 작품이 실려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색을 감히 사랑하는 독자로서 나는 그의 작품 읽기에 익숙하다. 하지만 자연스레 빨라지는 속도에 그..

기억과 망각의 힘 그리고 신비 가즈오 이시구로 저, ‘파묻힌 거인’을 읽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특히 노화, 질병, 사고로 인한 망각은 인생의 무거운 추가 되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 친지들을 말 없는 무게로 짓누른다. 개인의 망각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작게는 가족 문제로, 크게는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될 여지를 가진다. 한 사람의 망각은 여러 사람의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망각이 언제나 부정적인 건 아니다. 사실 우린 망각을 일상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경험하기에 그나마 지금과 같은 Norm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뇌는 사고의 중추를 담당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몸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 필요 (혹은 생존 본능)에 따라 우리 뇌는 기억을 조작하기도 삭제하기도 ..

예술가 헤세 헤르만 헤세 저,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고 헤세의 작품에는 유독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 주인공이 예술가인 경우도 있고, 그림이나 음악이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헤세 자신이 예술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이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헤세가 쓴 음악에 관련된 글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엮은 책이다. 그가 쓴 소설의 일부분이 소개되기도 하고, 그의 에세이, 시, 편지, 서평, 메모 등의 짧은 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에 관련해서도 이런 책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헤르만 헤세, 그림 위에 쓰다’ 정도로 말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그의 여러 작품을 훑어보며 예술과 관련된..

상처받은,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상처받은 사람들’을 읽고 최근 몇 년간 도스토예프스키를 후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열 편 이상 쭉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버렸다. 아니, 매료되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읽은 그의 작품보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의 분량이 현저하게 적어져 버린 지금, 남은 작품들을 아껴서 읽게 되고, 읽을 때면 사뭇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되는 나를 보면 나는 단순히 한 작가의 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끼고 경외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하는 독자가 되어버렸다.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

한 가문의 몰락, 그리고 그것의 의미 토마스 만 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고 천 페이지를 빼곡히 수놓은 문자들은 무덤덤하게도 한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1877년 열네 살의 나이에 티푸스로 죽은 마지막 아들 하노에 이르기까지, 사 대에 걸쳐 진행된 부덴브로크 가의 몰락. 작품은 하노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었던 1835년, 하노의 증조할아버지 요한 부덴브로크 1세의 말년을 비추면서 문을 연다. 그들은 최근에 근사한 저택을 새로 구입했다. 경사였다.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어떤 가시적인 열매는 이어지는 일의 내리막길과 종종 맞물리며 나타나는 법. 표면적으로는 기뻐해야 합당할 일 앞에서도 당사자들은 마음 어딘가에 어둡고 묵직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게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끼며 ..

자본주의의 기계성 뒤에 숨은 인간의 이기성,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인간다움 존 스타인벡 저, ‘분노의 포도’를 읽고 독서란 일차적으로 유희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유희가 목적인 독서는 그것이 닿을 수 있는 깊이의 반의 반도 이르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충분히 즐기면서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미만이 아닌 깊이와 풍성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나는 가끔 독서에도 비장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이때 독서는 단순한 ‘읽기’가 아닌 ‘이겨내기’의 의미를 띠고, 책은 ‘노는 장난감’이 아닌 ‘극복할 대상’이 된다. 언젠가부터 휴가를 맞이할 때면 평소엔 엄두를 못 내던 장편소설을 손에 든다. 이른바 ‘벽돌 깨기’다. 처음엔 백 퍼센트 도전정신으로 시작했다. 이..

부활의 역사성과 의미를 묵상하며 존 도미닉 크로산, N. T. 라이트 외 저, ‘예수 부활 논쟁’을 읽고 미국 와서 교회력에 친숙해지고 난 이후 매 사순절마다 예수의 부활에 관계된 책을 한 권씩 읽는다. 부활절이라고 삶은 달걀 위에 알록달록 물감을 칠해서 하나씩 나눠 먹는, 나로선 잘 이해가 안 가는 퍼포먼스보단 누군가의 글을 읽고 깊이 묵상하며 부활절을 맞이하는 편이 사순절을 더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크로산과 라이트의 주장과 해석을 비교 대조하고 그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몇몇 신학자들의 논문을 한데 모은 책이었다.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간된 ‘예수 부활 논쟁’이라는 책이다. 약 3년 전부터 나에게 외면을 받은 채 줄곧 책장에 꽂혀있었다. 하필 그즈음이 신학 ..

인간이란 무엇인가 프리모 레비 저,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2차 세계대전’ 하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우슈비츠’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단어는 반지성적인 우생학에 기반하여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신봉했던 ‘히틀러’나 ‘나치’가 아닌, 그들에 의해 실행된 유대인 대학살, 이른바 ‘홀로 코스트’이다. 악의 발현, 아니 악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것 같은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닌, 그들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희생당한 유대인들이 왜 나에겐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유럽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은 하루아침에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보다 못한 고깃덩어리로 전락했고, 엄청난 수가 도살되듯 강제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나에게 아우슈비츠는 세상에서 가장..

말하지 못해도, 보지 못해도 한강 저, ‘희랍어 시간’을 읽고 불연속성, 불친절함,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의식 저 아래에서 퍼 올린 조각난 단상들,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드는 상처의 깊은 흔적과 그 기억의 파편들, 그것들을 활자로 대면하면서 생경하게 느껴지는 강한 이질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거부할 수 없는 불편함.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때론 숨이 막혀서, 때론 내 심장이 귓가에서 하도 쿵쾅대서 잠시라도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공간으로 말하자면 인적이 드문 시골, 시간으로 말하자면, 곧 해가 뜰 새벽 다섯 시 정도가 아니라 가장 어둡고 가장 적막한 새벽 두세 시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두운 밤이 아닌 밝은 밤 최은영 저, ‘밝은 밤’을 읽고 서양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며, 한국어로 소설 쓰길 갈망하고 또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 소설의 지형과 흐름을 대략적이라도 파악하는 일은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 작업을 2년째 틈나는 대로 해오고 있다. 그래 봤자 지금처럼 여러 가지가 제한된 환경에서는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 몇 개씩 읽어나가는 일에 불과하지만, 그런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낼 때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주제의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고전을 좋아하고 그 깊은 맛을 사랑하는 내 취향 때문이리라, 하고 추측할..

절대적 평범성, 그리고 진정한 겸손함 카렐 차페크 저, ‘평범한 인생’을 읽고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평범하다’는 것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뜻이다. 뛰어나거나 색다르다는 것은 비상하거나 특별하다는 의미로써, 그렇게 판단하기 위해선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평범하다는 의미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이를테면, 휴대폰 사용자가 평범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건 아주 최근의 일이고 (시대 영향),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건 평범하지 않아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건 당연할 정도로 평범한 일이다 (문화 영향). 평범하다는 건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평범함은 이렇듯 시대와 문화에 따라 정의하기 나름일..

삶을 노래하는 예술 토마스 만 저,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 유럽 예술의 흐름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그 시기는 ‘데카당스’라는 단어를 빼곤 설명할 수 없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어원을 가지는 불어로써 ‘쇠락’ 혹은 ‘퇴폐’를 의미한다. 프랑스 예술가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데카당스 예술은 관능이나 도취를 일삼는 탐미주의 혹은 세기말적인 그로테스크 예술 양식과 맞닿아 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삶에 대한 강한 반감, 삶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할 수 있는데, 삶 자체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기에 데카당스 예술은 삶과 인간 모두에 반하는 사조, 그래서 삶과 예술을 분리시킨 예술로 이해하면 되겠다. 생의 철학, 힘에의 의지,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주의: 수동적인 운..

어두움을 통과한, 그 눈부신 빛 후우카 김 저,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을 읽고 누군가의 기억의 방으로 초대받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한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것을 내것인 것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는 일.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 공감 없는 이해는 피상적이고 때론 잔인할 수도 있기에 이러한 과정은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겪어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거룩하다 말한다. 타자를 안다는 것은 이런 거룩한 과정을 통과한 아름다운 열매이자 사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 믿는다. 후우카를 안 지 5년이 넘었다. 현재 남편인 정현욱 목사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나에게 있어 몇 안 ..

읽기 만만한, 그러나 충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읽고 2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이라 불리는 후기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크게 다짐했던 게 하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단,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붙였다. 내리읽지 않기. 어떤 한 작가에게 매료되면 그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고 싶어 지게 된다. 대부분은 생각만으로 끝나지만, 간혹 소수의 독자들은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이렇게 실행에 옮긴 독자들 대부분의 행로는 내리읽는 것이다. 즉, 한동안 그 작가의 작품에만 빠져 지내기로 계획하는 것이다. 이런 몰입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 작가의 필체에 너무 익숙해진다는 것, 그래서 그 작가만이 가진 고유..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난데없는 위로를 도제희 저,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저자는 201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당선, 등단한 작가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훌륭하다. 직장에서 난데없이 퇴사한 이후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으며 치유를 경험한, 보기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책 소개란에 적힌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수영을 배운다면, 퇴사라는 인생의 수렁에서 저자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택한 생존법은 고전 읽기다”라는 문장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사건과 상황만 다를 뿐 나 역시 인생의 낮은 점에서 책이라는 세상을 만난 후 궁극적으로 다다른 곳이 고전 문학이었고, 그 절박한 읽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했기 때문..

카프카적 상황과 전개가 주는 뜻밖의 위로 가즈오 이시구로 저,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읽고 몇 주째 지속되는 원인 불명의 불안 때문이었을까. 마침 읽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 내면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운명을 믿진 않지만 운명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공간을 향유하는 공감각적인 독서는 종종 독자를 과도한 자기 주관으로 이끌곤 한다. 하지만 불안했던 마음이 그로 인해 조용히 위로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 주관적인 해석을 부정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위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니까. 마치 운명처럼 알 수 없는 이유와 이해하기 힘든 과정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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