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편의 그림이 남는 작품 나쓰메 소세키 저, ‘풀베개’를 읽고 한 작가의 작품을 짧은 기간 다섯 편이나 읽게 되면 문체랄까 사상이랄까 하는 그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충분히 감지하게 되고 익숙해지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도스토옙스키도 이 일반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집 읽기를 시도했던 헤세, 이시구로, 루이스도 내겐 마찬가지였다. 처음 예외를 만났다. 바로 나쓰메 소세키다. ‘풀베개’로 그를 다섯 번째 만났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섯 번째 동명이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쓰메 소세키 전집 읽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다섯의 동명이인 중에 나는 다섯 번째 나쓰메 소세키를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새로 구입할 작정이다. 문학작품을 수백 ..

나의 길, 우리의 길 정여울 저, ‘헤세로 가는 길’을 읽고 개별적인 모든 상황 속에는 보편성이 숨어 있다. 우리가 낯선 타자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그 무엇.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여울이 걸은 헤세로 가는 길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정여울이라는 고유한 개별자가 걸은 길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 걸은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찰, 성찰, 통찰이 작가를 통과하면 글을 남긴다. 그 글은 가끔 독자를 관통하며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아주 가끔 그 생채기는 독자의 생각과 마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기어이 독자를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독자가 작가일 경우엔 또 하나의 글이 탄생하게 된다. 이 책은 독자 정여울이 읽은 헤세의 글들이 작가 정여울의 ..

태풍 앞에서 미적대는 인생 나쓰메 소세키 저, ‘태풍’을 읽고 태풍은 아무래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고,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그것이 한 장편소설의 제목으로 선정된 경우라면 독자는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는 왜 이 작품 제목을 태풍이라고 했을까. 거센 태풍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작품엔 충격적인 사건이나 상황이 전무하다. 소설이라는 특별한 세계에선 꽤 흔해 빠진 살인, 자살, 치정, 불치병, 혹은 출생의 비밀도 없다. 뚜렷한 위기, 절정, 해소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전체를 꿰뚫는 스토리텔링도 없다. 작품 평을 하자면 밋밋하다 못해 고요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단, 이러한 결론은 소설 표면에 드러난 정황으로만 볼..

무엇이 성장인가 나쓰메 소세키 저, ‘산시로’를 읽고 나쓰메 소세키는 다면체의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인 것 같다. ‘마음’에서 만났던 그의 글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실망감으로도 상실감으로도 다가왔다. 물론 그의 탁월한 필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나는 ‘산시로’에서 또 다른 모습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다는 '마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결코 같지 않다. 만약 작가의 이름을 손으로 가려놓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세 작품이 서로 다른 세 작가로부터 쓰인 거라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등장인물 이름이 제목으로 된 작품을 좋아한다. 이름은 강한 메시지를 표출하지 않는다. 덕분에 책을 읽기 전 선..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과 인간세계 나쓰메 소세키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나는 고양이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화자는 놀랍게도 고양이다. 상식적으로는 현실세계 고양이가 말을 할 리 없다. 게다가 장르가 소설이니만큼 이 고양이는 작가의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의인화된 매개체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발적인 첫 문장 (알다시피 제목도 같다)으로 운을 떼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과연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우물 안에선 우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판단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면 어떨까. 우물을 인간세계로 대치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세계 안에선 인간세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이를 조금 더 ..

현장이 가지는 힘 조지 오웰 저,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을 읽고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이자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제목에서 묘사하듯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의 빈민가, 그리고 그 안에서 전전긍긍하며 무의미한 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한다. 르포르타주는 아니지만 이 책에 보고된 정보들은 모두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지극히 사실적이다. 실제로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를 체험하고 그 체험담을 소설로 풀어쓴 글이기 때문이다. 300 페이지 남짓 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가난과 궁핍, 그 가운데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담고 있다. 세상엔 직..

첫인상과 같은 첫 문장: 소설가는 따라갈 뿐 오가와 요코 저,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을 읽고 소설에서 첫 문장은 사람의 첫인상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첫인상이 좋아도 지나고 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듯, 첫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그다음 문장들이 형편없으면 그 소설은 요란한 빈 깡통, 혹은 서두에만 잔뜩 힘이 들어간, 허세에 부푼 초보 작가의 어설프고 허술한 글이 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사실 둘은 상반되지도 않는다. 첫인상만 좋고 본모습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유형을 경계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코 첫인상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며, 첫인상이 그리 ..

시를 통해 인생을 훑다 신형철 저, ‘인생의 역사’를 읽고 평론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경직되는 기분을 느낀다. 논문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에서 가지는 위상과 평론이 문학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내겐 엇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평론은 어렵게만 느껴지고, 고난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가. 소설이 시보다 좀 더 대중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시는 이해하기 위해라기보다는 느끼기 위해 읽는다는 말까지 감안한다면, 나에겐 시 역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저 너머의 무엇인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든 책은 무려 시에 대한 평론집이다. 시와 평론의 이중창이라… 이 둘의 무게만 생각하면 나는 압사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바로 이 책 저자..

때마침 내린 단비처럼 내게 다가온 글쓰기 선생님 안정효 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고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글쓴이가 전면에 등장하여 자화자찬이나 연대기 형식의 지루한 자서전을 읊어댄다면 어떤 독자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글쓴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정보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글 역시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에세이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글쓴이는 가능한 자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위를 지혜롭게 조절해야 한다. 자신만으로 도배해서도, 자신을 죽여서도 안 된다. 한 편의 짧은 글이 아닌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면 이러한 수위 조절은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까지 내 돈 주고 사서 밑줄 그으..

돈인가, 하나님인가? 폴 스티븐스, 클라이브 림 공저, ‘돈은 중요하다’를 읽고 돈은 신이 아니지만 신과 같은 지위와 능력을 가진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대부분의 문제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넘어 마치 구원자의 자리까지 꿰찬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 현실이다. 월터 윙크는 그의 탁월한 저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진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폭력’ 임을 간파해내며 사람들 인식 저변에 깔린 ‘구원하는 폭력에 대한 신화’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구원이 마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막강한 힘 (이라 쓰고 무력, 폭력, 권력이..

미풍처럼 다가온 위로와 격려 김주련 저, ‘안녕, 안녕’을 읽고 “안녕”으로 시작해서 “같이 밥 먹어요, 우리”로 끝나는 책. ‘어서 와, 여기 네 자리가 있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말없이 들어주는 말들’로 읽는 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책. 아무 걱정 없다며 허세 부리지 않고 ‘걱정이 있지만, 지낼만해’라고 말하면서 읽는 이가 주눅 들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책. 이밖에도 제목만 읽어도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열다섯 꼭지의 짧은 이야기가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여백의 힘을 빌려 가볍고도 묵직하게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다. 특히 시와 에세이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글을 좀처럼 당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습기를 많이 먹어 무거워진 마음 빨래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미풍처럼 다가왔다. 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석영중 저, ‘인간 만세!’를 읽고 일부러 읽지 않았다. 비록 어설프고 부족할지라도 내 방식대로 해석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내 책에 그대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공인된 석영중 교수의 밀도 높은 해석 (바로 이 책, ‘인간 만세!’를 말한다)을 미리 읽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 책을 쓸 때 그 해석을 그대로 흉내 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는 내 책을 영원히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안도와 함께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마추어인 나의 해석이 프로 중 프로인 석영중 교수의 해석과 비교해서 덜..

텃밭과 정원, 일상과 그리움 카렐 차페크 저,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고 저는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과학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생물학자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무슨 연구를 하냐고 물어온다. 정확한 질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 엉뚱한 질문을 해오곤 한다. 경험상 그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첫째, 내가 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질병이나 암 치료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 (전 사람이 아니라 생쥐로 실험한답니다! 수술하다가 실수해도 고소당하는 일은 없어용). 둘째, 내가 수의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의 건강관리에 대해 묻는 사람들 (개 품종과 이름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다 안..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남으로 채우는 마쓰시에 마사시 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혼자 사는 삶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언제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혼자일 때의 자유를 잘 알고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슴 한 편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찾아내고 또 사수하려고 애쓴다. 물론 혼자 사는 삶과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은 내게 있어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교감과 감사 켄트 하루프 저,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지도 이미 오래된 두 남녀의 교감. 너무 늦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용기 내어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행복을 찾아나선 것일까. 어느날, 배우자를 잃은 지 한참 지난 칠십 대의 애디 무어는 같은 상황에 있는 이웃 루이스 워터스를 찾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섹스 이야기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애디는 그런 루이스를 눈치채고 말한다.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문학의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준 작품 마쓰이에 마사시 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평생 잊히지 않을 작품.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 곁에 두고 자주 읽으며 필사하고 또 외우고 싶은 책. 그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혹은 무인도에 가게 되더라도 가장 먼저 챙길 열 편의 작품 리스트에 당당히 오른 책. 아, 이런 축복이 또 나에게 주어지다니! 기발한 발상도,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 그러나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고 내 눈과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아버린 글의 전개는 작품을 읽는 내내, 그것도 장장 400 페이지에 걸쳐 지속되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어퍼컷처럼 체중을 실은 큰 한 방은 없지만, 무수히 많고 작은 잽들로 독자를 압도시키고, 나아가 중독까지 시켜버리는 ..

늦은 오후 햇살에 비친 일상의 긴 그림자 가즈오 이시구로 저, ‘녹턴’을 읽고 비록 나지막하지만,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작은 단편집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 하나다. 다섯 내러티브, 다섯 내레이터, 그리고 한 명의 작가. 이 엄연한 사실을 주지하기라도 하듯, 다섯 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색과 같은 톤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목소리다. 묻히기 쉬운, 마치 읊조리는 듯한 그의 작은 목소리를 알아챈다는 것은 곧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낸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 생각한다. 그렇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는다는 건 평범한 일상에 녹아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깃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의 가즈오 이시구로 전집 읽기의..

사도신경에서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김진혁 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를 읽고 저자 김진혁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그가 해제를 담당했고 칼 바르트의 절친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일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책을 놓칠 수 없었다. 그 책을 통해 문학 속에 녹아든 신학을 맛볼 수 있었으며, 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 아닐까 하는 현재의 내 지론에도 이르게 되었다. 특히 김진혁의 해제는 도스토옙스키를 해제한 투르나이젠에 대한 해제, 혹은 두 거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해제라고 볼 수 있기에 제삼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두..

마음 나쓰메 소세키 저, ‘마음’을 읽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품은 자를 확신으로 이끌었다가도 이내 무지의 바다에 빠뜨려 당황스럽게 하며, 알아챈 자 역시 동일한 미궁에 빠뜨리고 마는 것.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이며 정체를 알 수 없어 그 존재 자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 그러나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제목이기도 한 바로 그것. 마음. 읽는 내내 복잡한 마음이었다. 작품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작품을 읽는 내 마음만 복잡했을 뿐이다. 마치 확신과 무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심정이었다. 나는 또다시 내 안에서 깊은 모순을 느꼈고, 죄책감을 느꼈으며, 속죄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

일상을 시로 번역하기 크리스티앙 보뱅 저, ‘환희의 인간’을 읽고 모든 단어와 문장이 반짝거리는 글. 크리스티앙 보뱅에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표현도 식상하다. 소설가가 아닌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서 보뱅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왜 여태까지 그를 몰랐을까. 이제서라도 그를 알고 그의 글을 읽게 된 걸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할 때마다 나는 과연 내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묻게 된다. 괜한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 나서는 글 사냥꾼이 되고 싶은가 보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 문학을 가까이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문학은 내 삶의 여백을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