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투쟁의 여정: 풍성한 조화로움을 향하여.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영혼의 자서전’을 읽고. |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 책을 덮고 떨리는 숨결로 큰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크레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투명할 만큼 푸른 바다, 그리고 눈부신 태양과 빛나는 하얀 섬. 그러나 내겐 낯설기만 한 풍경. 크레타의 흙은 무슨 색을 띨까? 어떤 냄새를 낼까? 문득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부는 봄철에 에게 해를 항해하며 그가 느꼈을 충만한 ..

무사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를 읽고. 나는 철학도 신학도 하지 못하는 일을 감히 소설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주로 이성에 의지하여 문자로 번역해내는 작업이 철학과 신학이라면, 그 문자들이 가지는 본질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이성뿐만이 아닌 오감이 살아 숨 쉬는 삶이라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콘텍스트에 그것들을 오롯이 녹여내어 우리가 보다 깊고 풍성하게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유일한 통로가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신학이 어렵사리 번역해낸 텍스트가 더 이상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인 설명이나 물음의 목소리가 아닌 총천연색의 삶이라는 옷을 입음과 동시에 곧장 가려져버려, 텍스트에 의해 소외되었던 원래 ‘무’의 신비까지 되살..

꺼져가는 불꽃 앞에서. 필립 로스 저, ‘에브리맨’을 읽고. “현실은 소설 같기도 하고 개연성이 없어도 되지만, 소설은 그러면 안 된다. 소설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어렸던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름대로 인생의 높은 점과 낮은 점을 모두 지나보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15년 이상 살아도 보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10년 이상 아이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보기도 하며, 절망의 늪에 오래 빠져 있는 대신 소망의 가느다란 끈을 잡으려고 여전히 애쓰며 빠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제 나이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나는 그 말이 지니는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꺼져가는 즈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숙명..

살아내는 삶, 그리고 타자를 알아가는 애씀에 대하여. 서보 머그더 저, ‘도어’를 읽고. 아직도 눈을 감으면 나는 낯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거리에 서있다. 그 거리에 자리잡은 공동주택과, 당장이라도 음식 냄새, 커피향, 여러 꽃향기가 뒤섞여서 날 것 같은 넓은 앞마당, 그리고 그 뒤로 마치 세상과 담을 쌓은 것처럼 언제나 견고하게 닫혀있는 에메렌츠 집의 문이 보인다. 이어서 이 모든 것을 관망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로 조곤조곤 그 세상을 내게 보여주는 ‘나’, 그리고 에메렌츠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자, 때론 에메렌츠로, 때론 ‘나’의 내밀한 자아로, 때론 인간의 영역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의 뜻을 전해주는 매개자로 역할하는 것 같은, ‘비올라’라는 이름을 가진 개 한 마리도 보인다. 이 작품은 공간적으..

경계를 넘어서기. 그레고리 보일 저, ‘덜 소중한 삶은 없다’를 읽고. 머리말에서 저자 그레고리 보일 신부는 혹시라도 있을 이 책에 대한 오해를 예방하고자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이 책은 회고록이 아니라는 점. 둘째, 이 책은 ‘갱단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저자의 바람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 유대감의 범위가 확대되면 좋겠다. 이 책은 조직폭력배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찾아주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겪은 무시무시한 고난과 깨진 삶 속에서 우리 자신의 상처를 찾아내고자 한다.” 저자가 밝힌대로 이 책은 수많은 짧은 에피소드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실제 갱단에 소속되어 있던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임을 주의하라) 사람들의 실화다. 그만큼 ..

여행과 사람. 김영하 저, ‘여행의 이유’를 읽고. 이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김영하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토종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소설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이력을 가진 작가는 아직 소수에 불과한데, 김영하는 그중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여태껏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고전문학 읽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두고 있었다. 궁색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의 작품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독서모임 9월 도서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이 책을 일부러 구입하여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서모임이 선사하는 다양성의 향연과 그에 따른 암묵적인 압박을 즐기기로 이미 오래 전에 결정한 나는 며칠 ..

사람다움, 그리고 사람다울 수 있는 이유. 김현경 저, ‘사람, 장소, 환대’를 읽고.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자 중에서도 존재를 묻고 드러내는 유일한 존재자, 즉 현존재다. 이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 구별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김현경은 인간을 한 번 더 걸러낸다. 바로 ‘사람’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사람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코 우생학적 관점에서 도출된 말이 아니다. 이 논리는 모든 존재자 중에서도 현존재인 인간을 구별한 하이데거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 역시 인간의 우월함을 말하고자 현존재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나 모든 사물은 순수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어떤 사용의 맥락 안에서..

자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 고랸치꼬프. 귀족 출신인 그는 자기 부인을 살해한 죄로 서부 시베리아 옴스끄 지방에 위치한 감옥에서 10년 간의 형기를 무사히 마치고, K시 이주민으로 정착하여 겸허하고 조용한 일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과묵함을 넘어 대인기피증까지 있는 듯 사람들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살고 있었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 타입. 원래부터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유형 생활이 혹시라도 그에게 남겼을지 모르는 어떤 트라우마 탓이었을까. 그는 죽을 때조차 고독 속에서 홀로 죽었다. 그의 단절된 삶은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10년 간 강제로 빼앗겼던 자유를 마침내 되찾았건만, 그는 왜 마치 여전히 자유를 빼앗긴 사람처럼..

저 너머를 향한 갈망, 그리고 진창 속에도 비치는 소박한 구원의 빛줄기.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저, ‘도스토옙스키 (부제: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를 읽고. 20세기 저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1919년 ‘로마서’ 제 1판을 출판한다. 이어서 3년 뒤 1922년, 제 2판을 출판한다. 2판은 1판과 많이 달랐다. 전면 수정이었다. 바르트 스스로도 거의 모든 부분을 다시 썼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의 신학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 변화로 인한 차이 때문에 ‘로마서’ 제 2판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된다. 도대체 3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한 가지 단서는 ‘로마서’ 제 2판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판 서문에는 ..

진창 속에 빛나는 진주: 하나의 밀알, 한 사람에게 행한 작은 실천적 사랑.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가끔은 감당하기 버거운 감동에 노출되고는 무얼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그저 넋을 놓고 가만히 멈춰있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자극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임에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 앞에서 얼어붙는 것밖엔 없다. 감히 헤아릴 수 없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이 경외감마저 드는 순간. 느닷없이 찾아온 전율의 순간. 묵직한 펀치에 제대로 한 방 맞은 것처럼 나의 이성도 감성도 모두 숨을 죽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고요 앞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맞이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세밀하게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

구약: 하나님나라 백성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을 읽고. 성경은 드라마다. 성경은 규율이나 교리로 가득찬 책이 아니라, ‘창조’라는 시작과 ‘새창조’라는 끝을 가진 거대한 내러티브이며, 그 안에 구속이라는 플롯을 담고 있는 온 세상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각기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초청 받는다. 신약의 존재는 구약의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바울을 잘못 해석한 나머지 율법과 복음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구약을 율법, 신약을 복음이라고 여기거나, 예수를 잘못 해석한 ..

**이 글은 감상문이나 서평이 아닙니다 (그럴 깜냥이 안 됩니다). 그저 선생님의 친절한 수업을 들은 학생의 짧은 후기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다른 책 이전에 이 책을 먼저 접한다면 상당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양질 전화. 조성오 저, ‘철학 에세이’를 읽고. 어제와 오늘에 걸쳐 저번 주 Paul Kyung Jung 님이 빌려주신 ‘철학 에세이’를 읽었다. 철학책이라 어려울 거라는 나의 선입견은 단번에 무너졌다. 너무 술술 읽혀서 사실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 동안 주위에 있는 철학 덕후들 덕분에 철학책을 몇 권 같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고 (물론 반도 이해 못했지만), 그들의 토론을 귀동냥하며 듣고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들이 정말 양질 전화를 일..

나를 사랑할 용기: 이웃사랑을 위한 선작업. 브레네 브라운 저,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를 읽고. 다음은 시인 안젤루의 시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의 일부다. “어디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디에나 속한다고 느끼죠.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커다란 보상을 얻게 됩니다.”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대학생 시절 이 시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소속감, 그 중에서도 ‘진정한 소속감 (True Belonging)’에 대해 깨달아가는 저자의 여정을 그린다. 저자는 어릴 적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가족’에조차 속할 수 없었던 마음의 상처를 지닌 아이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그런 사람..

부재의 기억: 조금 더 온전한 역사를 기록하다. 하희정 저,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을 읽고. 흔히 하는 말처럼 역사는 승자, 강자, 혹은 살아남은 (혹은 죽인) 자들의 과거 해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기록에는 늘 배제되거나 잊혀진 나머지 절반 (어쩌면 다수), 즉 패자, 약자, 혹은 죽은 (죽임 당한) 자들의 이야기 (혹은 진실)가 누락된 셈이다. ‘온전한 역사’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부재의 기억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온전한 역사’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가 간파한 것처럼, 2000년 역사를 통틀어 기독교 역시 ‘권좌를 위한 종교’, ‘종교 위의 종교’로 군림했던 시기가 더 길기 때문이다. ‘우는 자를 위한 종교’로 출발했지만, 기독..

끝의 예감: 책임과 혼란. 줄리언 반스 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이 책의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저자의 뛰어난 필력, 그리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짜임새 있는 작품의 전개 덕에 숨가쁘게 책을 다 읽고, 쉴 시간도 없이 다시 책장을 앞뒤로 뒤적거리다가, 순간적인 전율과 함께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야 난 비로소 한국어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원제를 직역했거나 – 이를테면, ‘끝의 예감’ 정도로 – 번역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면, 책을 읽기 전 이 책에 대한 나의 인상은 분명 달랐을 테고, 저자의 의도는 물론 작품 속 복선 같은 여러 상징적인 메시지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을 것 같다. 한국어 제목은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효과를 내는 반면, 영..

하나님의 임재: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아서. 프레드릭 뷰크너 저,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를 읽고. 어렸을 적 경험한 아버지의 자살. 뷰크너의 거의 모든 글에 망령처럼 따라붙는 이 사건은 그의 시간을 두 세계로 나눈다. 그는 이를 각각 ‘시간 이전 (Once Below a Time)’과 ‘시간 이후 (Once Upon a Time)’라는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여 구분한 뒤, ‘시간 너머 (Beyond Time)’로부터 구원의 어떤 비밀이 우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시간 속으로 침투해온다고 믿는다. 시간 너머의 어떤 능력이 우리 모두의 인생과 모든 시간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세계의 구분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로 대표되는 첫 번째 세계로..

성숙한 창조 신앙으로. 김정형 저, ‘창조론’을 읽고. 하나님을 문자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면서도 스스로 기독교 정통임을 자처하는 근본주의자들이나, 고작 반지성/반과학적인 주장 (이름하여 유사과학)에 머무르면서도 감히 과학이란 단어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주관적 해석을 진리인듯 자신있게 강요하는 동시에, 자칭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창조과학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가진다. 영어로 ‘Creationism’이라 명명된 이 입장은 우리말로 넘어올 때 ‘창조론’으로 오역되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왔다. 저자 김정형은 책의 서두에서 이 오역을 먼저 바로 잡는다. 근본주의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의 반지성적인 창조에 관한 입장은 ‘창조설’로, 이에 반해 ‘창조..

여전히 눈먼 사람들. 주제 사라마구 저,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고. 이 책의 배경은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의 배경과 같다.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객이 바뀌었다. 전작에서 주요 인물이자 누구보다도 먼저 눈이 멀어 강제로 집단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일선에서 빠졌다. 대신 그들을 통제하는 데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엔 자기들도 눈이 멀어버렸던 정부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기이한 사건 이후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같은 공간을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제목으로 표현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4년이 흐르고 ‘눈뜬 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과연 이 도시엔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저자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억하다..

자유와 소망: 글을 쓴다는 것.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 '어제'를 읽고. 주인공 토비아스 호르바츠는 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 노동자다. 그는 오래 전 다른 나라에서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성인도 되기 전,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엄마와 내연 관계에 있었던 학교 교사,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유일한 사랑 린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남자 상도르의 등에 칼을 꽂았었다. 창녀이자 거지였던 엄마 에스테르가 그를 버리지 않고 키웠던 유일한 이유는, 그가 크면 일을 시켜 돈을 벌어내기 위해서였다. 상도르는 토비아스를 그런 식으로 키워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에스테르를 토비아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다. 언제나처럼 잠자리였던 부엌에서 이 이야기를 엿듣던 중 토비..

풋풋함과 알싸함의 공존. 이반 투르게네프 저, '첫사랑'을 읽고. 손님들이 대부분 돌아가고 난 어느 늦은 밤, 방 안에는 세 명만이 남았다. 적적함을 달래보고 싶었는지 느닷없이 집주인이 돌아가며 첫사랑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자기 순서가 다가오자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먼저 자신은 말솜씨가 전혀 없다고 운을 뗀 뒤, 첫사랑 이야기를 말로 하는 대신 기억나는 모든 것을 글로 써서 다음 번 만날 때 읽어주겠노라고 말한다. 썩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니었지만, 그는 두 주 뒤 보란 듯 그 약속을 지킨다. 이 책은 블라디미르가 쓴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회고록인 셈이다. 또한 실화에 입각한 저자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수기이기도 하다. 열여섯 살.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나이. 블라디미르는 첫사랑을 경험했다. 그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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