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으로 이르는 ‘완전한’ 행복 정유정 저, ‘완전한 행복’을 읽고 오랜만에 악몽을 꿨다. 그렇잖아도 어젯밤부터 가랑비 젖듯 불안이 시나브로 스며들어 몸과 마음이 무거웠는데, 급기야 잠든 동안 그것이 꿈의 한 장면으로 발현한 것이었다. 새벽에 큰 소리를 지르며 잠을 깼다. 쿵쾅대며 요동치는 내 심장 소리는 밤의 적막을 갈랐다. 꿈이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든 뒤 아침에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더니 머리가 지끈댔다. 아뿔싸. 편두통이었다. 잊힐만하면 간간이 찾아오는 불청객.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루 병가를 내고 약을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오후 1시. 그나마 머리가 개운하다. 날씨는 캘리포니아 답지 않게 비라도 내릴 것처럼 우중충하다. 회색 하늘, 서늘한 대기. 음산함마저 느껴진다...

종말의 의미 코맥 매카시 저, ‘로드’를 읽고 종말의 잔상이라고 해야 할까, 종말 이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종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종말은 무한한 시간으로 확장된다고 말해야 할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작품 속 지구는 대재앙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거의 모든 것은 불에 탔거나 불탄 흔적인 재로 덮였다. 동물이나 식물은, 즉 살아있는 생명체는 거의 다 자취를 감추었으며, 사람마저도 오직 소수만이 남았다. 그들은 모두 방랑자 (‘방랑자’라 쓰고 ‘부랑자’라 읽는다)가 되어 간신히 생명만을 부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이 표현은 잘못된 듯하다. 살아남은 자들이 마치 선택받은 것처럼, 혹은 무언가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허구가 담고 있는 진실 마거릿 애트우드 저, ‘시녀 이야기’를 읽고 페미니즘과 디스토피아가 절묘하게 만난 수작, ‘시녀 이야기’.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를 처음으로 만난다. 거장의 필체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간결한 문장은 기본인 데다 풍성한 상상력,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와 이성과 감성을 모두 깨우는 묵직한 음성, 그리고 티 나지 않고 날카로운 뼈를 감춘 채 정확히 급소를 찌르는 절제미까지. 압도적인 서사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그리 특별하지 않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서 고수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단 한 권만 읽었을 뿐인데, 저자 이름이 가려진 숱한 글 속에서 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을 어렵지 않게 ..

개혁의 작은 시작 레프 톨스토이 저, ‘부활’을 읽고 톨스토이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종류의 자아가 있다. 하나는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신적 자아, 다른 하나는 오직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그 행복을 위해서라면 전 세계 모든 행복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는 동물적 자아. 두 자아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존재한다. 어떤 자아가 우위를 점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내면은 물론 삶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동물적 자아가 정신적 자아를 압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아주 가끔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잠자고 있던 정신적 자아가 깨어날 때가 있는데, 이는 새로운 삶으로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단, 그 깨어남이 머리 혹은 가슴만 적시고 마..

파크 라이프: 현대인의 삶 요시다 슈이치 저, ‘파크 라이프’를 읽고 사소한 일상을 덤덤하게, 그러나 진부하지 않게 그려나가면서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에세이 같은 소설. 섣불리 어떤 교훈을 던져주려 하지도 않고, 인간의 내면이나 사회의 부조리 등과 같은 굵직한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적당한 수위를 유지하며 인물과 배경의 내면과 외면을, 자칫 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필체로 묘사해나갈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참 이상하게도 나는 주인공과 동행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고, 그가 보는 것과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남자라는 사실 빼곤 나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

정확한 단어, 정확한 문장, 깊고 풍성한 글 김소연 저, ‘마음사전’을 읽고 신형철은 글짓기는 집 짓기와 유사하다고 했다.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정확한 문장은 단 하나의 문장이 존재한다고 했다. 좋은 글, 잘 쓴 글은 곧 정확한 글이라는 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문장들을 찾아내어 모아놓은 정확한 글이 좋은 글이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관건이다. 많고 다양한 단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문장력은 글쓴이가 가진 어휘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적은 어휘로도 간결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입체적인 의미를 담는 장문의 글을 써낼 수는 없다. 간결함이 단조로움으로 수렴된다면, 그렇게 써진 글 역시 단조..

인간: 문학과 뇌과학의 접점 석영중 저, ‘뇌를 훔친 소설가’를 읽고 (책의 부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의 글쓰기는 그녀가 강연할 때 사용하는 말투가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자동 음성 지원이 되어 강연을 듣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진다. 그만큼 쉽고 매끄러운 글을 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문학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동시에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까지 구사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난해하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줄 수 있다는 건 탁월한 전문성을 갖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배울 게 많은 교수이자 작가다. 유튜브에 올라온 몇 편의 강연을 나는 지난 2년 간 모두 ..

넓은 지경의 신앙 마커스 J. 보그 저,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를 읽고 (책의 부제: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건 이스라엘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민족 삼아 열방에 복을 전하는 게 하나님 선교의 목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열방에 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러지 못했다. 참 이스라엘로,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이야기의 완성이자 모든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다. 예수는 왕이시며 주님이시다. 구원자이자 해방자이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점점 오해되고 있다. 구원의 문화가 복음의 문화로 둔갑한 현실을 보라. 예수의 복음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개인 영혼 구원 정도로 축소되었다. 구..

미묘한 심리, 덤덤하고 섬세하고 우아한 필체 가즈오 이시구로 저,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인간의 특별함’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두 번째로 펴 든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읽기 전부터 개요는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 흔히 겪을 ‘놀라움’이 내겐 없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장기 기증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 인간들의 삶’이라는 기발한 공상과학적인 구도보다 나에겐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의 필체가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하나둘씩, 아주 조금씩 저마다 다른 작가의 고유함과 탁월함을 조용히 관찰하고, 가능하다면 그것들을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남아 있는 나날’, ‘클라라와..

악이 아닌 악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 김영하 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읽은 직후 우연찮게 손에 든 책이 하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니! 살인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일기 형식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접점을 가진다. 그러나 그 접점 말곤 전혀 다른 느낌이다. ‘종의 기원’에서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한유진이라는 젊은 남성 내면에서 악의 발현과 진화를 현재 진행형으로 현장감 있게 관찰할 수 있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25년 전까지 숱하게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었던 70세 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망각의 강으로 빠져드는 과정과 망상의 난잡함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을 죽이게 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종의..

악의 진화 정유정 저, ‘종의 기원’을 읽고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존재할까? 사람을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선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악한 사람은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행동은 생각과 마음에서 기인하므로 선한 행동은 선한 생각과 선한 마음에서, 악한 행동은 악한 생각과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일까? 아닐 것이다.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보는 건 인간의 본성을 전혀 모르거나 인간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유아적 발상에 불과하다. 이율배반성, 모순, 예측불허성과 같은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과 범죄학이 대두되고 발전한 이유,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대를 초월..

또 다른 많은 펠리시아를 생각하며. 윌리엄 트레버 저, ‘펠리시아의 여정’을 읽고. 아일랜드 출신 소녀 펠리시아는 어느 날 그녀에게 성큼 다가온 한 남자 조니 라이서트와 사랑에 빠진다. 스스로도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다고 여기던 그녀였기에 펠리시아의 눈은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의 천박함을 꿰뚫어 볼 만큼 밝지 못했다. 조니는 그저 펠리시아를 갖고 논 건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짧은 만남이 한 여름밤의 불장난으로 끝났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흔적을 남겼다. 펠리시아의 몸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생명의 씨앗을 남기고 말았다. 어린 펠리시아에겐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펠리시아..

인간의 특별함 혹은 인간다움이란? 가즈오 이시구로 저,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인간은 특별할까? 다른 생물체에 비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과연 무엇이 특별한 걸까? 특별하다면 그 특별함은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기인한 걸까? 아니면, 철학적 혹은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걸까? 인간의 특별함은 이미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사회정치학적으로 수없이 다뤄진 주제이고, 지금도 여전히 이에 대한 논쟁이 그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면, 아직 이렇다 할 답에 이르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공상과학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클론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들이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는 추세도 있기에 이런 현상은 계속 지연되고 지연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우린 끝내 답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숭고함의 이면. 오가와 요코 저, ‘임신 캘린더’를 읽고. 오가와 요코에게 1991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임신 캘린더’를 포함하여 이 책에는 ‘기숙사’, ‘해 질 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이라는 두 단편소설이 더 실려 있다. 이 글은 세 작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임신 캘린더'에 대한 감상문이다. 임신을 경험해 본 적도, 경험할 수도 없는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먼저, 몇 달 전부터 오가와 요코의 글이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이 심란하고 시간에 쫓기는 일상으로 치달을 때 그녀의 글을 읽으면 환기가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쉬이 지나칠 사소한 것들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도와주는 ..

글 쓰기에 대한 동네 형의 진심 어린 조언. 장강명 저,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6년 만에 힘들게 박사 학위를 받아냈을 때, 사람들이 박사라고 불러주면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에 합당한 애를 써서 성취한 대가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새로이 듣게 된 ‘작가’라는 단어 앞에선 부끄럽기만 하다. 그 말을 듣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년 말, 나는 한 일인 출판사 대표의 위험지수 높은 고마운 믿음 덕분에 책 한번 써본, 소위 ‘저자’가 되었고, 또 얼마 전에는 한 작은 기독교 출판사에서 개최한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부문 가작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작가라고 불리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이 부..

‘정상’과 ‘평범’의 비린내 나는 실체. 손원평 저, ‘아몬드’를 읽고. 나는 한때 정점을 찍고 잊히고 마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정점을 찍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를 선호한다. 한번 가볍게 읽고 마는 대중소설보다는 조금 공을 들여야만 읽어낼 수 있고 읽고 나면 소장하고 싶어지는 고전소설을 좋아한다. 그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관심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 힘을 나는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알라딘 웹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훑어보는 나로선 손원평의 ‘아몬드’를 놓쳤을 리가 없다. 우선 표지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인듯한 한 소년의 얼굴. 표지 전체를 차지하는 증명사진 식의 큰 그림. 제목 ‘아몬드’, 그리고 한 소년의..

행운 아닌 우연. 르 클레지오 저, ‘우연’을 읽고. 모게, 나시마, 아자르.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 지금까지 꽤 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이처럼 이국적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 소설은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적어도 단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대신, 르 클레지오 특유의 색채라고 보는 게 더 적당할 것이다. 그가 만약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 작품을 썼더라도 분명 똑같은 느낌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내가 읽은 책은 한국어 번역본 아닌가. 재창작이라고도 불리는 ‘번역’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하면서도 낯선 이국의 느낌을 뒤틀어짐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작품이라니! 나는 르 클레지오가 더 궁금해졌다. 언제 내 손에 들릴진 여전히 미지..

희석된 감동, 농축된 이해: 톨스토이 삶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안나 카레니나와 그의 인생관과 도덕관. 석영중 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읽고. 작가의 필력이란 이런 걸 말하는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글. 이런 쉽지 않은 내용으로 이렇게 재미있게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중간중간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여러 번 웃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부분에선 사뭇 진지해진 나머지 작가가 바라보는 톨스토이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했으며, 대문호라는 간판의 어두운 그늘도 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라는 러시아 고전문학 작가와 그가 쓴 작품 여러 편을 다루면서 석영중은 톨스토이의 사상과 삶에 대해 고찰한다. 제목에서 ‘도덕에 미치다’라는 표현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게 될 즈음이면 아마 대부..

축복 전 상실의 존재 의미. 오가와 요코 저, ‘우연한 축복’을 읽고. 이 얇은 단편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에세이 같은 소설은 제목에서처럼 ‘우연한 축복’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축복은 일견 획득의 뉘앙스를 풍긴다. 우연히 찾아온 선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획득 이전에 언제나 있었던, 그러나 번번이 잊히고 마는 상실의 존재를 조용히 일깨우고 작고 낮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삶이란 원래 그런 것처럼, 커다란 상실 뒤에 찾아온 우연 같은 축복을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나를 찾아온 축복들을, 그 이면에 자리했을 상실들을, 그리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감사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창궐하고 사라지는 전염병,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의 본성. 정유정 저, ‘28’을 읽고. 이 작품은 화양이란 도시에서 28일 간 일어난 원인모를 에피데믹이자 인수공통전염병의 발단과 창궐을 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인공 격인 서재형을 비롯한 몇몇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파헤친다. 읽다 보면 언뜻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 혹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경험이 전무한 에피데믹이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다. 만약 COVID-19처럼 원인이 바이러스인 경우, 백신 개발에는 병원체 파악, DNA 나 RNA의 염기서열 파악, 백신 디자인, 예비실험, 오류 수정, 여러 차례에 걸친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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