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파사데나 과신대 10월 모임 후기. 과거엔 많은 것들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들을 밝힐만한 지식과 기술이 부재했다. 문명의 발달은 이를 가능케 해주었다. 그로 인해 인간의 호기심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고, 미신적인 믿음 또한 점차 사라져갔다. 과학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많은 것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치며, 과거의 몇몇 천재들이 착상해낸 가설이 시대를 앞선 과학적 사실로 증명되기도 하고, 이와 반대로 여러 관측과 실험을 통하여 그 가설이 그저 상상력의 발현으로만 남게된 경우도 있다. 많은 천재들의 직관도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는 이유는 전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서 검증과정이 수도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과..
Perhaps. 수백명 이상의 전체 교인 평균 연령이 약 27세이며, Hollywood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 Mosaic에 방문하여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주차나 예배 안내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20대였다. 대형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교회에는 그렇게나 부족한 허리 연령대가 여기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마치 대학청년부 예배에 참석한 것같이 다시 젊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예배의 시작은 온몸이 쿵쿵 울릴만큼 증폭되어 ccm을 리드하는 드럼 소리였다. 모든 잡음들을 흡수해 버릴 것만 같았다. 콘서트 무대 앞쪽에 배치된 커다란 스피커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그때 내가 느꼈던 심정을 그나마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설교는 사무엘상 14장 6절이 핵심이었다. Jonathan said to hi..
더 큰 고통? 알고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다. 멀쩡하게 아무 일 없이 사는 사람 같아보여도 술 한 잔 기울이며 속에 있는 말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연이 있다. 그로부터 얻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그 상처가 지금의 그 사람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어른이 되는 과정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면서 과거에 받았던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평등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권리와 의무를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의 존재는 모두 불완전하고 유한하다. 존재의 신비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 불완전한 다양성에서부터 기인할지도 모르겠다.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회심을 경험했다는, ..
유진 피터슨을 읽다 - 교회에 대하여. 유진 피터슨의 책은 이번이 겨우 두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글의 깊이와 수려한 필체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필립 얀시보다 유진 피터슨이 좋다.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을 읽고 있다. 한 동안 이런저런 일로 끊겨서 계속해서 미뤄졌던 책인데, 이번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어들었다. 이 책은 꼭 읽고 감상문을 써야지. Paul Kyung Jung 집사님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유진 피터슨을 만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감사드린다. 아래에 오늘 점심 먹다가 내게 쏙 들어온, 줄 그어놓은 문장들을 옮겨놓는다 (교회에 관한 부분이다). 내게 왔던 울림이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p74.| 교회..
판단하지 않는 곳. 사람이 nice하다고 해서 greedy하지 않다는 법은 없다. 종종 이 두 가지 캐릭터는 당황스럽게도 동일 인물에게서 발견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대할 때마다 난 그 사람에 대해 실망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안에 고정되어 있었던 선입관, 즉 nice와 greedy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섬뜩한다. 이런 의외의 순간들은 예언자적인 메시지가 되어 우리 안에 잘못 뿌리내린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사람은 rigid하지만 humble하다. 또 어떤 사람은 stubborn하지만 sacrificial하다. 의외로 우리 주위엔 우리의 선입관에 어긋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일면만 보고서 사람을 판단해선 결코 안되는 이유다. 우리의 선입관은 다음과..
해소. 지적인 호기심이 잉태한 이성적인 깨달음으로부터 가슴이 뛸만큼 강렬하게 감정까지 터치 당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확 사로잡히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살면서 좀처럼 겪기 힘든 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고질적이고 편협했던 마음과 생각을 해방시켜 자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이런 순간들을 예배 때 가끔 경험하곤 했다. 교만했던 내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부끄러워지는 단계를 거쳐, 그런 내 모습도 받아주시고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헤세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회개하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난 점점 교회에서 목이 마르다. 교회 공동체에서 채우려했던 갈증은 슬프게도 그곳에서 채워지지 않는다. 교회력과 세상력에 따라 치러지는 수많은 행사들에서 남는 건 빛바랜..
일치. |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우리 삶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가난한 이웃에 대한 공의야말로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의미 있게, 하나님이 받을 만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삶을 수반하지 않는 제사는 가증하고 헛되다는 평가를 내리신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삶이 없는 제사는 우상숭배와도 같다. 그것은 정성스럽게 제사를 드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김근주 저, '이사야 특강' 91 페이지에서 발췌. 오늘날 교회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일터에서의 모습, 그리고 가정에서의 모습까지 모두 다른 2중, 3중의 모습으로 분열하여 살아가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나라를, 즉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을..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인 1386 페이지에 도착했습니다! 단단한 벽돌과도 같은 이 책을 올해 2월부터 무식하게 혼자서 끈질기게 읽어왔습니다. 거의 5개월이 걸렸네요. 이렇게 두꺼운 주해의 도움을 받으며 읽었지만 이해 안 되는 부분이나 와 닿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모세오경을 성경책으로만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냥 건너뛰는 부분이 거의 없었고, 친절한 해설 덕에 이제서야 기본적인 모세오경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작점에 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성경책으로만 성경을 읽는 것이 얼마나 용감했던 건지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저에겐 참 좋은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봅니다. 아래에 짧은 소감을 나눕니다. 내일부턴 김근주 교수님의 이사야 특강의 도..
소명의식. 직업을 소명, 즉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는 자세는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 역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일터 현장은 작은 세상과도 같다. 어느 곳이나 피라미드 구조가 존재하며, 소위 갑질로 알려진, 가진 자들의 횡포는 지겨운 일상이 되어 식상할 정도로 사회에 만연해있다. 법과 질서를 만들어놓고 서로 지키며 개인의 이익 뿐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며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아이들 도덕 교과서에나 적혀 있는 이상일 뿐이다. 학교 시스템에서 갓 나온 아이들이 사회에 진입했을 때 겪는 그 괴리감은 지금 어른이 된 기성세대 역시 뼈아프게 공감하는 바일 테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는 어두운..
처음 방문한 새들백 교회 (Saddleback Church)에서. 어마어마한 부지, 하나의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한 teaching pastor의 메시지는 내게 인사이트를 주었다. 5월 27일, Memorial Day Weekend.Lake Forest 에 위치한 Saddleback Church 11시 예배 설교 간단 요약. 주요 성경 구절: "Do your best, prepare for the worst, then trust God to bring victory." Proverb 21:31. 첫 번째 서론 (based on Hebrews 11:1):Expect the best that will be done by God in your life. The bible calls that faith.>>> ..
죄와 하나님의 신실하심. 김회권 저, '모세오경' 중 민수기 편을 읽고.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 중 네 번째 책인 민수기 편도 다 읽었다. 책갈피는 1032 페이지를 가리키고 있다. 이제 마지막 책인 신명기 편이 남았다. 아직 약 350 페이지 남았다. 이 벽돌 같은 책을 나처럼 처음부터 죽 무식하게 읽어나가는 사람은 아마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처럼 신학의 문외한이 신학에 관심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상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신학을 전공했다면 아마 부분적으로 필요한 곳만 찾아서 참고하는 정도로 이 벽돌을 대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이렇게 무식한 게 기적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거북이가 개근상을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다. 민수기를 읽어냈으니 흔적을 남기기..
구름기둥과 불기둥. 가끔은 차라리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여달라고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가야할 때인지 서야할 때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다. 가시적인 사인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만히 내 중심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을 때가 많다.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것 같아서 벌써부터 염려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미 내 안의 성령께선 조용한 가운데 가야할 길을 알려주셨음에도, 나의 의지가 그것을 거스르고, 어떻게든 손을 써보면, 내가 선택한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이라고 퉁칠 수 있는, 어떤 그럴싸한 이유..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을 느리지만 지속해서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를 마쳤습니다. 사십 평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레위기를 읽어봤습니다. 이제 페이지로는 830 페이지를 지나갑니다. 오늘 밤부턴 민수기로 들어갑니다.** 레위기를 읽고. 태어나 처음으로 레위기를 꽤 자세하게 읽었다.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 덕분이다. 이런 도움 없이 마흔이 되도록 수 차례 레위기를 읽어왔지만, 한 번도 마음에 와 닿거나 담긴 적이 없었다. 내게 레위기는 그저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제사법들이 지루하게 열거되어 있을 뿐이었다. 제사를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드리지 않으면 직접 출애굽 시키신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까다롭고 때론 엽기적인 궁금증으로 도배되었던 책이 ..
전투. 지금도 종종 내 안에서는 두 가지의 상반된 생각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하나는, ‘내가 지금 이런 사소한 일에 묶여있어도 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일에도 성실히 충성을 다해야지!’하는 생각이다. 수만 번 넘게 생각했기에 낯설지 않은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조차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기적인 합리화에서 오는 묘한 흥분,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오는 기분 나쁜 죄책감에 휩싸일 때면, 어쩌면 내게 이 문제는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이 전투를 내게서 떼어내어, 서툴지만 분석을 해보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언제나 그렇듯, 답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
**어제밤,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 중 레위기에 진입했습니다. 서론에서부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누고 싶어 발췌했습니다. 덕분에 지루해서 항상 스킵했던 레위기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역시 성경만 읽어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신학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레위기는 출애굽기 19:5-6, "온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지만 너희가 내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내게 대하여 특별한 보배가 되고 온 세계 백성들을 내게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에 대한 길고 자세한 해설이다. 레위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가지의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예물 (제사)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물'을 코르반이라고 한다. ..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 중 출애굽기를 끝내고 (660페이지를 넘어갑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묵상하며 써내려간 글입니다. 오늘밤부턴 레위기로 여행을 떠납니다.** 견딤. 믿음의 고백이나 결단, 깨달음과 깨우침, 그리고 은혜 받고 감사하는 모습. 모두 찬사를 받기에 합당한 순간들이지만, 어쩌면 이것들은 전체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한낱 하나의 미분계수, 즉 순간기울기값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앙인의 여정은 단조로운 직선코스이기보단, 계속해서 기울기가 변하여 수시로 극소와 극대점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다차원의 곡선코스다. 우리들 중엔 이미 최소점이나 최대점을 지나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현재 최소점을 향해 치닫고 있어 좌절과 원망, 포기의 심정으로 가득 차 있는 이도 있..
드러냄. 어두움은 빛을 받으면 사라진다. 빛의 힘이다. 빛의 존재는 어두움의 부재다.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은 굴곡을 가진다. 높음과 낮음, 깊음과 얕음이 존재한다. 빛은 높음 뒤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깊은 곳의 어두움은 건드리지 못한다. 평면 같았던 산도 빛을 받으면, 음영이 생기고 굴곡이 드러난다. 밋밋함이 사라지고, 비로소 입체가 된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조화, 산의 진면목이다. 우리 인간도 하나의 산이다. 평면이 아닌 입체다. 인생의 역경이 굴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없이 깎이기도, 움푹 패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린 빛을 늘 받는 높음 뒤의 그림자도 가지며, 빛이 닿지 못하는 깊은 골짜기도 가진다. 빛을 받았으나 아직 어두움에 머무는 그곳. 그곳엔 아..
드러남. 땅 속에 있는 씨에도 생명이 있다. 그러나 그 씨를 뿌린 농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대지를 뚫고나와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전까지는. 드러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타인에게 보여지지 않는 생명은 살아있다 하더라도 아직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온전한 의미의 생명이란 숨쉬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생육하고 또 번성해야 한다. 또 다른 생명을 낳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사적인 복음은 땅 속에서 숨만 쉬고 있는 씨와도 같다. 발아하지 않는다. 대지를 뚫고나오는 용기와 그에 따른 아픔을 거부한다. 홀로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생명을 주신 이의, 더 많은 생명을 잉태하는 그 생명력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안위를 위하여 던져버리는 것..
예언자? 난 신비주의를 신봉하진 않지만, 그런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신비적인 경험을 하나 나누고자 한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마치 본의 아니게 미래를 보게 되었던 경험. 그것도 두 차례 씩이나. 독립적인 시기와 장소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첫 번째 경험은 2012년 12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클리블랜드에서 살기 시작한지 1년 하고도 4개월째 접어들던 시기다. 내가 성공을 위하여 대학원생 때처럼 열심히 노오력하며 실험실에서 생활하고 있을 무렵, 아내는 지인의 도움으로 클리블랜드 클리닉 내과에서 observer로 참여하여 괜찮은 추천서를 받아냈고, 미국 레지던트 지원을 해서 매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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